누가복음 (17)
성경: 누가복음 5장 27~39절 / 제목: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맥체인 성경 읽기(1월 27일): 가정(창세기 28장, 마태복음 27장) 개인(에스더 4장, 사도행전 27장) / 복있는 사람 성경 읽기: 출애굽기 38~40장

<레위가 제자가 됨, 27~29절>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27절). 마가복음 2장 14절에는, 그가 알패오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내 제자가 되어라’는 뜻입니다.
마태와 레위가 각각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 확실합니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레위라는 이름을 지닌 것은 레위 지파에 속했던 사람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이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꺼리는 사람을 제자로 삼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님의 명령에 레위는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28절). 그는 세리로서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세리였던 마태는 한 번 떠나면 옛 직업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결단은 매우 파격적인 것입니다.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이날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레위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세리의 삶을 접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덕을 끼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알리기 위해 잔치가 열린 것입니다. 이는 마태(레위)가 상당한 부를 누리는 부자였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손님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잡수셨습니다(29절). ‘앉다’는 비스듬히 누운 자세를 묘사하며, 로마 사람들의 풍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중앙에 두고 그 주위에 비스듬히 누워 교제하며 음식을 나눴습니다.
당시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동료와 사회적 지위를 정의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함께 먹는 그룹에 속하기 위해 때로는 여러 가지 예식 등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마태도 자신이 소속된 사회적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동료 세리들을 초대해 잔치를 했습니다.
<세리와 죄인이 함께 한 잔치, 30~32절>
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잔치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30절). ‘그들의 서기관들’은,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 중 바리새인 출신을 뜻합니다. 시기와 질투로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자들이 드디어 문제가 될만한 일을 포착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찌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냐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곧 그들의 악한 행실을 용납하시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들이 이방인을 자주 접하고 안식일에도 일을 한다며 혐오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마태(레위)의 잔치에 참석할 리는 없습니다. 그들은 ‘분리’로 구원을 정의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죄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에 이끄시는 것입니다.
또한 ‘죄인’은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율법 해석과 적용을 어긴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만들어 낸 기준으로 의인과 죄인을 판단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십니다. 가장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도 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직접 비방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했습니다(30절 상). 예수님을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입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예수님이 그들의 문제 제기에 직접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가 있나니.”(31절) 이 말씀은 당시 사용되던 격언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병자가 의사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영적으로 가장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식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자신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십니다(32절). 이 말씀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는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영적 의사인 예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고, 자신을 지라는 질병을 앓는 병자로 고백하는 죄인들은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고치실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필요를 절실히 느낍니다.
<금식과 제자들, 33~39절>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모두 금식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33절). 율법은 속죄일에 금식할 것을 요구합니다(레 16:29~34; 23:27~32; 민 29:7). 그 외에 모두 자원해서 하는 금식입니다. 구약 시대 유대인들은 특별한 날에 금식했습니다(슥 7:5; 8:19, 참조).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속죄일 외에도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습니다(눅 18:11~12, 참조).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욕주의를 지향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을 지지하며 따르는 일반인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뿐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일반인들도 금식을 하는데, 더 높은 신앙의 경지에 있다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지 묻고 있습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예수님과 제자들도 속죄일에는 금식했던 확실합니다. 율법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 삼는 것은 매주 이틀씩 하는 금식입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머지않아 주님의 제자들도 금식할 날이 닥치겠지만, 지금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34~35절).
예수님은 주님의 백성이 학수고대하던 하나님 나라를 드디어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혼인식에 버금가는 기쁜 잔치를 할 때입니다(34절). 또한 레위 같은 죄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히 축하할 때입니다.
혼인 잔치의 신랑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신랑으로 묘사하는 것은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새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결혼식에 버금가는 기쁨과 축하의 잔치가 열릴 만한 일입니다.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 잔치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35절). ‘빼앗기다’는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제거될 것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고난받는 종(사 53:8, 참조)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반영하고 있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예수님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실 것이며(사 53:7~8), 제자들은 슬퍼하며 금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슬퍼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지향하는 옛 율법(구약)과 자신과 제자들이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두 가지 비유를 통해 대조하십니다. 첫째, 율법은 낡은 옷과 같고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새 옷에 찢어낸 조각과 같습니다(36절). 예수님은 구멍 난 오래된 옷과 같은 옛 종교적 전통을 때우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옷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율법을 준수하되 그 본 뜻은 저버리고 형식만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그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율법이 줄 수 없는 죄 사함과 구원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둘째, 옛 율법은 낡은 가죽 부대와 같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37~38절). 당시 액체를 담는 가죽 부대는 주로 무두칠한(tanned) 염소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오래 사용할수록 뻣뻣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한편, 새 포도주는 이제 막 발표가 시작된 것을 뜻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발효 작용으로 인해 부피가 팽창합니다. 따라서 새 포도주는 빳빳하고 단단해져 늘어나지 않는 낡은 가죽 부대에는 넣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내용물의 부피가 팽창하면서 부대를 찢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용물도 버리고, 부대도 못 쓰게 됩니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는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38절). 그래서 오래된 가죽 부대와 같은 옛 시스템에 담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옛 율법을 새 생명으로 채우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새 시스템에 담아야 합니다. 이제는 제자도가 융통성 없는 기계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지향하는 유대교 시스템을 대신합니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대부분 유대인들은 ‘묵은 포도주’(옛 율법)에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들은 묵은 포도주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39절). 그러므로 “묵은 것이 좋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시 유행하던 격언입니다. 그들은 새 포도주(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며,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유대인 중에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숫자가 극히 제한적일 것임을 암시합니다.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