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 / 잠언(22)
9월 26일
성경: 잠언 25장 1~15절 / 제목: 솔로몬의 잠언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사무엘하 22장, 갈라디아서 2장) 개인(에스겔 29장, 시편 78:1~37) 복있는사람 성경읽기: 이사야 1~4장

<왕과 질서, 1~7절>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잠 25:1)
솔로몬의 잠언이며, 잠언 25장 1절부터 29장 7절까지 이어집니다. 남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왕(B.C. 715~686년)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앗수르(앗시리아)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히스기야는 과거의 많은 문서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였습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 25:2)
하나님의 영광은 일을 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신비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의 질서와 원리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의 질서와 원리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의 원리를 밝혀내고 이를 이용하여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을 ‘왕의 영광’이라고 잠언에서 말합니다.
왕은 이러한 일들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창조질서를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여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고, 역사적 삶 가운데 공의와 정의를 세워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잠 25:3)
왕의 마음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원리와 법칙처럼 신비로워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신비로운 창조의 영역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 신비로운 영역을 왕의 마음에 비유합니다. 왕의 마음은 하나님의 계획처럼 신비롭고 알기 어렵습니다. 오직 지혜자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잠 25:4)
이 말씀은 은의 제련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원광석에서 불순물을 많이 제거할수록 은의 순도는 높아지고 은으로서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값어치가 나가는 은제품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잠 25:5)
왕 주위에 있는 악한 자는 4절의 ‘찌꺼기’나 ‘불순물’에 해당합니다. 왕은 ‘은’에 비유됩니다. 악한 자들은 왕의 곁에서 공의를 세우는 일을 돕지 않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의 권위를 훼손하고, 왕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공의의 실천을 그르치게 합니다. 왕은 자신의 주변에 아첨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왕을 돕는 지혜자를 세우고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의가 살아나고, 왕으로서의 권위와 영광이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잠 25:6)
이는 신하들이 가져야 할 겸손의 덕목을 말씀합니다. 두 가지 경고를 합니다. 첫째,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높은 자는 왕입니다. 그러나 왕의 신뢰를 받는 유능한 신하들이 자신을 높여서 자신이 가진 지위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인’은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왕을 포함한 자기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현재적 위치를 잘못 판단하고 스스로 잘난 체하면 동일한 자리에 서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잠 25:7)
스스로 교만한 체하는 자는 추락하게 됩니다.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과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비교됩니다. 앞의 것이 낫습니다. 스스로 높은 체하는 자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므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신하들을 위한 잠언, 8~15절>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잠 25:8)
‘너의 눈으로 보고, 급하게 나가서 다투지 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눈으로 보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좀 더 깊이 있게 파악하고 난 다음에 행동해야 합니다. 눈으로 보자마자 나가서 다투는 일은 지혜가 하면 안 될 일입니다.
그럴 경우 분쟁에 휘말리게 되며, 이웃으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궁정 안에의 세계는 음모와 시기 질투가 많이 있습니다. 쉽게 흥분하고 분쟁에 휩싸이면 신하로서의 위치가 위태롭게 될 수도 있습니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잠 25:9)
다툼의 원칙은 다툴 것은 다투되, 그 과정에서 얻은 비밀은 누설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쟁에 휩싸여 다툴 때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 사안만 다루어야 합니다. 다른 사적인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됩니다.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잠 25:10)
남의 비밀을 누설하게 될 경우, 피해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피해는 그 다툼을 중재하는 자, 즉 듣는 자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비밀을 누설하는 자에 대한 나쁜 평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더욱 나쁜 평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신의(信義)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 25:11)
경우에 적합 말은 가치가 있습니다. ‘금 사과’는 최상급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최고의 사과’입니다. ‘아로새긴’은 예술가의 손길을 표현한 것입니다. 즉 예술가가 만든 최고의 은쟁반 위에 놓인 최고의 사과입니다.
최고의 사과는 최고의 쟁반에 놓여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반대로 “돼지코에 금사슬”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말의 가치도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경우에 어울려야 합니다. 적합한 말은 신하들이 가저야 할 덕목입니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잠 25:12)
‘슬기로운 책망’은 ‘잘 듣는 귀’와 어울릴 때 최고의 가치를 지닙니다. ‘잘 듣는 귀’는 배우려는 의지와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에게 어울리는 것은 ‘금 고리와 정금 장식’입니다. 최고의 사람에게만 최고의 장식품이 어울립니다.
신하는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고 순종하는 일은 지도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 25:13)
‘사자(使者)’는 심부름꾼입니다. 그는 주인의 말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왕의 사자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왕의 말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국가의 ‘대사’와 같은 일을 합니다. 그는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합니다.
왕을 말을 잘 전해서 상대를 설득해야 합니다. ‘충성스런 사자’의 가치는 ‘추수하는 날의 얼음’에 비유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추수기는 더운 계절입니다. 따라서 얼음이 담긴 냉수는 더위를 식혀줍니다. 왕의 사자가 역할을 잘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효과는 더운 여름날의 얼음 냉수를 마실 때의 시원함과 견줄만 합니다.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잠 25:14)
선물한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비없는 구름과 바람’에 비유됩니다. 높은 사람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위치를 이용해서 더 큰 것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하나로 현실을 왜곡하여 부풀려 상대를 속이려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의 어리석음을 ‘비 없는 구름과 바람’에 빗대어 말합니다. 비는 생명을 줍니다. 비 없는 구름은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에 불과합니다. 바람은 잡을 수 없는 찰나적인 것이며, 아무것도 건질 수 없습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잠 25:15)
오래 참음과 말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오래 참음’은 말과 행동의 절제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할말 안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참고 인내하면 결국 ‘관원’ 즉 ‘높은 사람, 통치자’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혀’는 신체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부분입니다. 뼈는 신체 가운데 가장 단단한 부분입니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부러뜨릴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로 인내하고 설득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견고해도 단단할지라도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김일국 목사(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