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 / 잠언(11)
9월 13일
성경: 잠언 20장 1~15절 / 제목: 어리석은 자, 거만한 자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사무엘하 8, 9장, 고린도후서 2장) 개인(에스겔 16장, 시편 58, 59편) 복있는사람 성경읽기: 로마서 4~7장
<어리석은 자, 1~4절>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포도주’와 ‘독주’를 의인화하여 ‘조롱하게 하는자’와 ‘떠들게 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이들은 친구처럼 묘사합니다. 이들과 같이 놀다가 유혹당해 지혜를 잃어버립니다. 지혜란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제대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잠 20:2) 왕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권력을 가진 자이므로, 왕의 화를 돋우는 자는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왕을 화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 20:3)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 사람이 영예를 지키는 법은 다툼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괜히 싸움을 걸기도 하고, 싸움에 끼어들어 수치를 당합니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잠 20:4) 심고 거두는 이치는 농사의 기본적인 질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로 가을에 심고 늦은 봄에 거둬 들입니다. 심어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들은 심지 않았으므로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둘 때에 구걸하지만, 심지 않았으므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힘든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거두는 곳에 가서 곡물만 얻으려고 하지만, 얻지 못할 것입니다.
<명철, 5~9절)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잠 20:5)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었으므로, 인간 안에는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그 지혜를 ‘모략’이라고 부르며, 맘속의 깊은 물과 같습니다.
원래 ‘깊은 물’은 땅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모략’은 겉으로 드러나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맘속의 깊은 곳에 감추어진 샘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명철을 가진 자만이 그것을 퍼 오릴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 20:6)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신실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누가 진실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가?’라는 의미입니다. “경건한 자(히, ‘하시드’)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엎도다.”(미 7:1) 이 잠언은 ‘신실한 자’가 사라진 이 세상을 한탄한 것입니다.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잠 20:7) ‘의인’은 온전한 길을 걷는 자이며, 후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잠은 십계명의 내용과 같습니다.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잠 20:8) 왕이 가질 재판에서 베풀 수 있는 의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왕은 정의로운 재판을 통하여 의를 회복시키고, 악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재판은 내적인 통치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외적으로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중요하지만, 내적으로 의를 통한 통치로 인한 악의 제거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적인 악의 제거는 가난한 자의 구제, 억울한 자의 구제를 포함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잠 20:9)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 죄를 사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롬 3:9~20, 참조). 누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죄를 짓지만, 여호와 앞에 죄를 드러내 고백하고 순종하는 자를 여호와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정직, 10~15>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잠 20:10) 속이는 상거래는 신뢰를 깨뜨리고,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고, 정의와 공의의 주인 되신 여호와를 속이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그것을 가증스럽게 여깁니다.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 20:11) ‘어린이라도 그들의 행동으로 그들이 청결하고 정직한지를 알릴 수 있습니다.’ 클리포드(Clifford)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어린이도 의로운 행동을 속이는데, 어른들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잠 20:12) 귀의 역할은 듣는 것입니다. 눈은 보는 역할을 합니다. 눈과 귀는 여호와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듣고 봄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사는 보고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중심이 아닙니다.
중심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이 잠언은 눈과 귀를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를 생각하고, 눈과 귀를 여호와의 뜻을 찾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잠 20:13) 게으른 자는 일하러 가는 것보다는 잠자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잠언은 게으름과 반대되는 성실과 근면함을 강조합니다.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잠 20:14) 상거래는 물건을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거래로 이루어집니다. 사는 사람은 적게 주려 하고, 파는 사람은 많이 받으려 합니다. 잠언은 자로 파는 사람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보고 흠집을 잡아 값을 싸게 주고 사고 난 후, 돌아가서는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즉 ‘보는 행위’의 중요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잠 20:15) 물건을 두고 값을 비교합니다. 비교의 대상은 ‘금과 진주’와 ‘지혜로운/지식이 가득한 입술’입니다. 금과 진주는 보석으로 가장 값이 많이 나가는 물건입니다. 보기에 매우 아름다고 귀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지식으로 가득 찬 입술’입니다. 즉 보이는 것의 아름다움보다 보이지 않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김일국 목사(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