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15)
10월 28일
성경: 갈라디아서 5장 13~26절 / 제목: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열왕기하 9장, 디모데전서 6장) 개인(호세아 1장, 시편 119:73~96)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예레미야 49~50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본질, 13~18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자유의 선물은 이 선물을 주는 분의 선한 의도를 악용해서는 안 되고, 그분의 의도를 충분히 이루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의도는 성령의 인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육체의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육체의 정욕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임하는 성령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4)
제자들은 이타적인 섬김으로 율법을 행할 의무에 매이지 않고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이룰 것입니다. 바울은 “온 율법”은 “한 말씀에서” 즉 하나의 계명을 행하는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바울은 율법은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것이 아니고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함”, “지킴”, “준수함”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루다”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자는 사랑이 종노릇으로 전체 율법을 이룹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나 “성령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은 율법에 메여 있는 자와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바울은 헬라어 명령형을 택해 이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주의할 것을 촉구합니다. “계속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본질상 종노릇했던 삶을 끝내고 하나님과의 새롭고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간 것은 성령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발맞추어 걸음으로써 자유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를 악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을 통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중심에 두고 일상의 행동에서 성령의 지도와 능력을 받는 자는 ‘확실히 육체가 바라는 것을 이루지 아니할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성령과 육체는 동등한 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영향 아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행하지 못하도록 신자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특별히 자신의 영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성령으로” 걷는 사람에게 육체와 육체의 욕심과 소욕을 물리칠 힘을 주십니다.
바울은 이 싸움을 신자의 싸움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과 “육체의 욕심”의 싸움으로 제시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싸움에 가담해 성령님께 순종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바울이 “성령이 인도하는 바”를 “율법 아래” 있는 것과 대조합니다. “자유”를 “욕심의 권능을 억제하는” 신적 영과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살 때 실현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투쟁의 실상, 19~26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갈 5:19)
바울이 악덕 목록을 제시하는 것은 “육체의 일”, 곧 육체가 인간의 삶을 지배할 때 나타나는 일련의 태도와 행위와 결과를 예증하기 위함입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것을 율법을 이루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일” 목록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의 부재와 왜곡을 지적합니다.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갈 5:20)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 5:22)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3)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 5:24)
바울이 육체와 성령이 서로 계속해서 대적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이미 확언한 것처럼 이 둘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세력입니다.
신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죽음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 특히 “우리를 위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이 성령의 지배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육체의 지배에서 벗어나도록 새로운 능력을 공급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5)
바울은 육체의 인도를 받는 삶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을 짝지어 묘사합니다. 성령 안에서 살면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육체에 대하여 죽는 일이 생기고, 이 죽음은 우리가 “옛 사람” 곧 아담의 형상을 따라 형성된 사람으로 존재했던 것과 가졌던 것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6)
이 권고는 교회 안에서 인간 상호 관계나 공동체 관계의 건강을 위협하는 “육체의 일”을 피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합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