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10)
10월 23일
성경: 갈라디아서 3장 19~25절 / 제목: 율법은 왜 주어졌는가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열왕기하 4장, 디모데전서 1장) 개인(다니엘 8장, 시편 116편)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예레미야 30~32장

<‘그런즉 율법이 무엇이냐?’, 19~20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준 것과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전달된 “때가 찬 것” 사이의 제한된 기간에 역할을 하도록 율법이 한시적인 조치로 도입되었습니다.
율법을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을 바꾸지 못하고 주도적 장치인 약속의 목적보다 열등한 어떤 중간적이고 한시적인 목적으로 작용하는 후속 장치로 “더하여진” 것이라고 계속 말할 때 새로운 단계로 연계시킵니다.
1. 율법은 범법을 제한하거나 억제하는 힘을 행사한다.
2. 율법은 범법을 다루는 수단을 제공한다. 범법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3. 율법은 범법을 부추긴다.
4. 율법은 범법을 범법으로 확인함으로써 범법을 의식하게 하고, 인간의 행동과 하나님의 ‘의’ 사이의 거리에 대해 깨닫게 한다.
율법은 죄에 대한 의식을 가져 옵니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그 계명을 이용해서 인간 마음의 모든 방향에서 탐욕을 자극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계명은 간접이더라도 범법을 자극합니다. 훈육 선생이 과거가 된 제한된 기간에 어느 정도 선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갈 3:20)
율법의 “더해짐”에 연루된 중재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율법이 중재 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과 비교해 율법이 열등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더 신뢰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정의상 중재자는 한 당사자가 아니라 복수의 당사자를 대표하거나 복수의 당사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거스리느냐, 21~22절>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하나님이 준 율법이 하나님이 준 약속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단순히 약속된 복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이 살게 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은 의,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는 데 선결 조건이 되는 의를 사람들 속에 뿌리내리게 만들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약속과 반대됩니다. 율법은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신자 속에 거하여 온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일어나는 새로운 길을 여러 놓는 “살게 할 수” 힘이 없습니다. 의는 “살게 하는” 것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옵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율법은 생명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갈 3:22)
<우리가 율법 아래 있을 때의 모습, 23~24절>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갈 3:23)
율법의 권세는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을 본받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씨에 참여도록 한 것입니다. 믿음의 옴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 유익을 얻게 됩니다.
“율법”이 특정 시점에 온 하나님에게 반응하는 생활 방식이었던 것처럼, 믿음은 오직 시간의 어느 한 시점, 즉 그리스도인 씨가 올 때 가능하게 된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와 생활 방식을 가리킵니다.
율법과 똑같이 믿음이 온 것도 믿음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 자에게 하나님에게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 한 백성을 형성하는 것에 작용하는 새로운 종류의 경륜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게 한 것과 이 믿음에 맞추어 사는 것과 관련하여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위한 메시아의 충성된 죽음과 그 죽음의 직접적 결과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함이라.”(갈 3:24)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음을써 새로운 경륜인 믿음의 가치에 맞추어 반응하는 모든 자에게 의의 소망이 주어지는 경륜입니다.
약속-율법-그 씨/ 그리스도 오심
이런 구조가 확립됩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믿음의 도래”를 율법이 권세를 누리던 시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그 씨, 곧 그리스도의 도래와 비슷하게 들을 것입니다(19절).
“믿음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게된 그 씨가 왔기 때문에 율법이 권세를 누리던 시기가 끝나기 전에” 또는 똑같이 “예수의 죽음의 결과와 우리의 마음속에 흘러넘칠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합치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일어나기 전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갈 3:25)
바울은 율법 아래 사는 삶을 어느 정도 재력 있는 집안의 미성년 자녀가 초등교사 아래 사는 삶을 비유합니다.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의 경험을 정해진 기간 “보호받고” “함께 갇혀 있는” 것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본보기를 제시합니다. 모세 율법, 즉 토라를 염두에 둡니다. 율법의 효력은 모든 면에서 “그들을 가두고” “그들을 메어두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가두고 보호하고 엄격하게 감독하는 율법의 기능을 비유합니다. 이는 가정에서 미성년 자녀를 관리하는 초등교사의 직무를 생각하게 합니다.
초등교사가 행하는 관리는 그의 후견인 권한에 대한 비난은 있지만, 초등교사는 집안에서 미성년 자녀의 삶에 긍정적 영향도 있습니다. 초등교사(헬, ‘페더고그’ ‘페더고지’)는 자녀교육과 관련된 말입니다. 학교에서 어린아이, 젊은이를 가르치는 데 사용되는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