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8)
11월 21일
성경: 요한계시록 4장 1~11절 / 제목: 하늘의 예배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역대상 16장, 야고보서 3장) 개인(오바댜 1장, 누가복음 5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에베소서 4~6장

하늘 보좌 환상(계 4~5장)은 요한이 언제, 어떻게 환상을 체험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환상은 인을 떼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역사의 종말을 계시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영원히 경배를 받으시는 동안, 요한계시록은 역사를 그 종말에 이르게 하는 특정한 사건들을 계시해 주십니다.
이 환상의 첫 부분(4장)은 그 초점이 하늘의 보좌에 있는데, 유대 진통이 그러하듯, 그를 둘러싸고 있는 광채를 빼놓고서 이 보좌에 앉아 있는 분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이 보좌 주위에 이십사 보좌가 있는데, 여기에는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과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보좌에서 번개와 우렛소리가 납니다. 보좌 앞에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서 있습니다. 보좌 앞에 흐르는 유리 바다는 이 장면에 웅장함을 더합니다. 네 생물이 예배 인도자로 섬기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포합니다. 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앞에 엎드려, 자신들의 면류관을 그 앞에 던지며 하나님을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 찬양하고 높입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이 같은 천상의 환상이 허락된 것은 밧모의 외로운 선견자 요한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경배하는 하늘의 천사들과, 또 그들이 하나님을 통치하는 창조주로 인정하는 이 환상은, 요한으로 하여금 이어지는 환상들 속에서 보게 될 모든 것을 신실하게 전하는 사자(使者)가 되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요한이 본 것, 1~3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
이 환상은 요한이 열린 문이 하늘에 있는 것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요한은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미래의 기간과 연결될 것입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기원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하늘로의 승천은 예상 밖의 일은 아닙니다. 역사에 대한 통찰은 우리가 모든 일을 하늘 보좌의 관점으로 볼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계 4:2)
요한은 하늘에서 처음 본 것은 보좌였습니다. 보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보좌 위에 계신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계 4:8)이며, 그의 앞에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경배하며(계 4:10), 만물이 찬양과 경배의 송영에 동참합니다(계 5:13).
이 열린 하늘과 보좌에 앉은 하나님의 장면이 헨델(Hendel)의 메시아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 4:3)
요한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이를 어떤 종류의 인간적인 형태로도 묘사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보다는, 값진 보석으로부터 발산되는 찬란한 빛으로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세 보석(벽옥, 홍보석, 녹보석)이 무엇인가는 불분명합니다. 현대의 벽옥은 다이아몬드에 가깝습니다. 홍보속(홍옥수, sardius)은 선홍색 보석입니다. 녹보석은 일반적으로 녹색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돌들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영예로운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플라톤은 이 돌들을 값진 보석의 대표로 언급했습니다. 여러 가지 돌에 대해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어 왔습니다. 벽옥은 위엄, 거룩 그리고 순결 등의 특징과 연결되어 왔습니다.
홍보석은 분노 또는 심판, 녹보석은 자비와 연결되어 해석되었습니다. 무지개는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킵니다. 이 보석들은 상징적인 형태로 찬란하고 범접할 수 없는 빛으로 옷 입으신 하나님의 위엄을 묘사합니다.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 4~11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는 이십사 보좌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십사 장로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이들로 묘사됩니다.
두 번에 걸쳐 그들 중 한 명이 화자 또는 해설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들이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일에 동참하는 경우도 한 번 등장합니다. 경배와 찬양이 그들의 입술에 계속됩니다.
이십사 장로를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거룩한 천사적 존재이며, 이십사 제사장과 이십사 레위인의 서열의 천상적 대응체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들의 역할은 왕이요 성직자이며 또한 재판관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흰 옷은 거룩함을 보여 주며, 금관은 왕권을 말해 줍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
보좌에서 나오는 번개와 우레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위엄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우레와 번개의 상징은 항상 성전 장면과 연결되며 매우 중요한 사건임을 알려 줍니다. 또 일곱 영이 천사와 같은 존재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계 4:6)
이 보좌 앞으로 뻗어져 나오는 것은 유리 바다였습니다. 이 바다는 수정처럼 밝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천상의 바다라는 유대 사상과 연결짓습니다. “유리 바다”의 출처를 찾아야 한다면, 에스겔 1장에 나오는 위대한 보좌 병거로 가야할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와 더불어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네 생물이 보좌를 일종의 안쪽 원처럼 둘러 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위치는 경배를 인도하는 그들의 역할에 알맞습니다.
이십사 장로와 마찬가지로, 네 생물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 4:7)
요한의 생물들은 오직 하나만 얼굴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셋은 사자와 소, 그리고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네 형태는 살아있는 자연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강하고, 지혜로우며, 민첩한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천사적인 존재들입니다. “사자의 힘과, 소처럼 섬기는 능력, 사람의 지력, 그리고 독수리의 민첩함을 가진 자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계 4:8)
네 생물은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지속적인 경배는 묵시에서 일반적으로 하늘을 묘사하는 공통적 특징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찬양은 묵시의 핵심인 하나님의 속성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그의 거룩함, 능력, 영원함입니다.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가 피조물과 완전히 구별되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극심한 시험과 박해에 들어가게 될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선언하는 것은 힘과 용기를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강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거룩함과 전능함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자속됩니다. 그는 “어제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십니다.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계 4:9)
네 생물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때마다 이십사 장로들은 보좌 앞에 엎드려 자신들의 면류관을 드리며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를 경배하는 데 동참합니다. 엎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올바른 반응입니다. 즉 경배하는 것은 그의 영원한 존재에 합당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계 4:10)
‘경배’라는 단어는 원래 신적인 존재 앞에 스스로 납작 엎드려 그의 발이나 그 옷의 가장자리에 입 맞추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들의 면류관을 던지면서 장로들은 그들의 권세가 위임받은 권세임을 인정합니다. 그들이 받은 존귀가 홀로 우주적인 존귀를 받기에 합당한 분에게 아낌없이 돌아갑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장로들의 찬양은 생물들의 찬양과 구분됩니다. 찬양이 하나님께 직접 드려지며 하나님의 속성보다는 그분의 창조 사역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오직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분만이 합당합니다. 송영(계 4:8)은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 장면은 경이롭고, 하나님은 완전한 타자이며 초월적이십니다. 요한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적인 반응을 기록합니다. 이 반응은 다음 환상의 죽임 당한 어린 양의 환상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