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2)
성경: 빌레몬서 1장 17~25절 / 제목: 용서와 신뢰
맥체인 성경 읽기(1월 7일): 가정(창세기 7장, 마태복음 7장) 개인(에스라 7장, 사도행전 7장) / 복있는 사람 성경 읽기: 창 25~27장

<내 앞으로 계산하라, 17~19절>
묵상을 위한 질문
1. 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환영해야 합니까?
2. 오네시모가 “불의를” 행하였다면 바울이 어떻게 그것을 바르게 하겠다고 제안합니까?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과 동역자 관계이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원한 것은 빌레몬이 바울을 영접하는 것처럼 오네시모에 대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의 부탁으로 빌레몬은 바울을 영접하듯이, 도망쳤던 종 오네시모를 영접해야 했습니다.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어떤 불의나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이 대신 계산하겠다고 말했습니다(18절). 빌레몬은 자유를 찾아 도망치기 전에 주인의 것을 훔침으로써 주인에게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18절).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레몬에게 말하기를 “그것을(그 ‘빚’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바울이 자신을 도운 오네시모에게 보답하려고 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진 빚을 스스로 갚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호의로 오네시모를 위하여 그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빌레몬에게 말한 것입니다.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빌레몬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진 것은 복음의 빚입니다.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이 종이었던 오네시모에게 받을 것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빌레몬이 사도 바울에 진 사랑의 빚, 복음의 빚은 오네시모에 받아야 할 것보다 더욱 큰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확신, 20~22절>
묵상을 위한 질문
3. 바울은 왜 빌레몬에게 돌아가려 합니까?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바울은 빌레몬이 다른 성도들 마음에 평안함을 주었듯이(7절), 오네시모를 향한 사랑을 보임으로 바울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달라(20절)고 부탁했습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받아 달라는 바울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대우하고(16절), “더 행할 줄을 아노라”라고 말했습니다(21절).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래야만 빌레몬에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22절). 이것을 보면 바울이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사는 지역을 방문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요청한 오네 시모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끝 인사, 23~25절>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은 함께 갇혀 있는 에바브라(23절), 동역자 미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와 함께 빌레몬에게 문안 인사를 했습니다.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은 빌레몬과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다른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마칩니다.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
마가복음(49)
3월 28일 목
성경: 마가복음 15장 21~32절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출애굽기 39장, 요한복음 18장) 개인 (잠언 15장, 빌립보서 2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여호수아 22~24장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21~32절>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은 다른 사형수 두 명과 함께 군인들에 의해 총독 관저에서 처형 장소로 끌려갔습니다. 십자가 처형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십자가의 가로대를 짊어지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채찍질로 인해 너무 쇠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짦은 거리만 짊어지고 갔습니다. 행렬이 성문에 가까워졌을 때, 군인들은 방금 시골에서 돌아온 한 남자가 예수님에게서 그 나무를 받아 처형 장소로 지고 가도록 강제했습니다. 그는 구레네 시몬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막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성읍의 거주 지역을 벗어나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유대인과 로마인 모두의 관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성벽 밖이었지만 성벽 근처에 있었습니다(요 19:20). 사람들은 이곳을 ‘해골’이라는 뜻의 골고다라고 불렀는데, 아람어로 이 이름은 둥글고 헐벗은 작은 언덕을 가리킵니다.
막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오랜 전통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존경받는 여성들은 극심한 고통에 대한 민감성을 줄이기 위해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에게 마약 음료를 제공했습니다. AD 1세기에 군의관 디오스코리데스 페다니우스는 600여 종의 식물과 1,000여 종의 약물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몰약의 마취 특성을 관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도착했을 때, 여인들이 몰약을 섞은 포도주를 권했지만, 예수님은 이를 거절하고 자신을 위해 정해진 고난을 온전히 감당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막15: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일반적으로 범죄자는 옷을 벗기고 채찍질을 한 후 뻗은 팔을 십자가 가로대에 못 박고 끈으로 묶었고 범죄자 자신이 그것을 짊어지고 처형 장소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십자가 가로대를 몸과 함께 들어 올려 땅에 이미 똑바로 세워 둔 말뚝을 고정했고 이제 여기에도 발을 못으로 박았습니다. 이렇게 직립 기둥과 가로 기둥에 의해 형성된 십자가는 아마도 T자 모양이었을 것입니다. 기둥 중간쯤에 고정된 나무 블록이 있어서 몸을 지탱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본질적으로 탈진에 의한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에 걸리는 시간은 희생자의 신체 상태와 몸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방식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남자들이 교수대에 묶여 있을 때는 며칠 동안 살아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로마 법률 문서는 사형 집행자가 사형수의 사소한 소유물을 청구하는 것이 허용된 권리임을 확인합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의복을 위해 제비 뽑았다’는 시편 22편 18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막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예수님께서 ‘제삼시’, 즉 아침 9시쯤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막15: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죄수는 백묵으로 하얗게 칠한 나무판을 걸치거나 들고 갔는데, 거기에는 그의 죄를 명시하는 글자가 잉크나 불로 그을려 적혀 있었습니다. 처형 후 이 요약문은 십자가 못 박힌 자의 머리 위 십자가에 고정되었습니다. 고문당한 예수님의 시신이 메달린 십자가에 부착된 안내문에는 흰 바탕에 검은색 또는 붉은색 글씨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막15: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막15:28 (없음)
예수님께서 달린 십자가는 다른 두 사람의 십자가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된 죄목은 중죄인 반역죄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체포한 열심당원들을 처형하였습니다.
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막15: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십자가 처형에는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고, 그중 일부는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를 비웃었습니다. 가야바의 저택에서 열린 재판에서 증인들이 소개한 성전 파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조롱 섞인 암시는 산헤드린 일원 또는 청문회에 참석할 특권을 가진 법정 수행원들이었을 것입니다. ‘머리를 흔들며’라는 표현은 시편에서 가난하지만 의로운 고난당하는 자에게 쏟아지는 조롱과 예루살렘이 처참한 굴욕을 당할 때의 비웃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경멸적인 도전을 하였습니다.
막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막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넘기고 기소함으로써 예수님을 죽이려는 그들의 원하는 바가 이뤄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31절) 예수님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사명을 완수하시려면 하나님이 정하신 고난에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지금 내려오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조롱의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주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실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온전히 고난 받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조롱과 멸시를 견디셨습니다. 주님의 이 고난이 없었다면 어떻게 죄인이 구원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