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38)

마가복음(38)
3월 15일
성경: 마가복음 12장 35~44절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출애굽기 26장, 요한복음 5장) 개인 (잠언 2장, 갈라디아서 1장)
복있는사람 성경읽기: 마가복음 5~6장
<서기관에 관한 경고, 38~40절>
막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12: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서기관들의 악습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가 소개됩니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며, 여기서 그들의 자기도취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존경 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만일 그들이 율법에 전념하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하나님만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만 열심을 내는 자들이라야 했을 것입니다.
서기관은 세마포 옷, 곧 발까지 닿고 긴 술 장식이 달린 흰색 망토로 구별되었습니다. 흰 세마포 옷은 구별의 표시로 여겨졌기 때문에 저명한 사람들(제사장, 레위인, 서기관) 또는 자신의 지위를 뽐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흰색 옷을 입었고 밝은 색 옷은 일반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대다수 백성은 서기관들을 무한한 존경과 경외심으로 숭상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주권적인 권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서기관들은 ‘랍비’, ‘아버지’, ‘스승’과 같은 깊은 존경이 담긴 호칭으로 인사를 받았는데, 특히 ‘랍비’라는 호칭이 AD. 1세기에 일반적인 명예의 칭호에서 안수 받은 서기관에게만 주어지는 칭호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귀인들은 잔치를 베풀 때 저명한 서기관과 그의 제자들이 참석하는 것이 잔치를 더 빛나게 해 준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높은 자리가 배정되었고, 서기관은 노인들, 심지어 부모보다 우선적으로 존중을 받았습니다. 회당에서도 서기관을 위해 상석을 예비했고 그는 토라가 들어 있는 궤를 등지고 회중이 다 보이는 맨 앞에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지위의 증표에 대한 욕망과 자기만족을 영속화하려는 서기관들을 정죄했습니다.
막12: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존경에 대한 욕망에서 특권 남용으로 강조점이 전환됩니다. AD 1세기에 직무 수행에 대해 보수를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로 보조금으로 생활했습니다(W. W. Lane, Mark, 476).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한 서기관은 거의 없었지만, 예루살렘 서기관들이 가난한 계층에 속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습니다. 이들에게 환대를 베푸는 것은 경건한 행위로써 강력히 권장되었으며, 특히 서기관들의 생계 걱정을 덜어 주는 것은 공덕으로 여겨졌습니다.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서기관에게 맡겼기 때문에 남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기관들이 ‘과부의 가산을 집어 삼켰다’는 비난은 그들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환대를 빌미로 삼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깊은 경건을 구실로 공적인 기도를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기회로 삼았다는 비난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균형 잡힌 관점을 상실했을 위험을 나타냅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며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바친 과부, 41~44절>
막12: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이 말씀은 서기관들의 거짓 의와 절대 빈곤 상태에 있는 이름 없는 과부의 하나님을 향한 전심전력하는 헌신 사이의 차이를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전을 떠나면서 성전 건물의 완전한 파괴를 예언하셨습니다(막 13:1~2).
예수님은 의자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성전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많이’ 가져온 부유한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예물의 크기로 얼마나 가난한지 짐직할 수 있는 한 여자를 주목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팔레스타인에서 유통되던 가장 작은 동전 두 닢을 그 그릇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 동전의 가치를 로마 화폐 단위로 계산하면 ‘한 고드란트’입니다.
막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과부에게서 제자들이 깨달아야 할 모범을 보셨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제자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가져온 상당한 규모의 예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큰 기여를 했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막 10:25~26, 참조). 그런 부자들이 바친 것에 비하면 작은 동전 두 닢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경건에 대한 가정(假定)을 뒤집으셨습니다. 열두 제자가 깨닫지 못했던 것은 과부의 예물이 상징하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었습니다. 풍족한 것 중에서 예물을 가져온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 생활비를 모두 드렸습니다. 이 여자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을 헌신하여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 사이의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이 여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제자들이 이해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부르심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또한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그리고 존경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 가운데서 받는 자연스러운 존경은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우리 삶 가운데 취하는 것이 있다면 다 버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참된 믿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