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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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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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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35)

3월 12일

성경: 마가복음 12장 1~17절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출애굽기 23장, 요한복음 2장) 개인 (욥기 41장, 고린도후서 11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마태복음 27~28장

<반항하는 소작인 비유, 1~12절>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막 12:1)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의 본질과 출처에 대해 질문하러 온 산헤드린 대표들에게 한 비유를 들려 주었습니다. 포도원에 대한 비유의 첫 번째 세부 사항은 이사야 5장 1~2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5장 1~2절에 호소하셨으며, 이는 청중으로 하여금 이 비유가 자신들이 맡은 지위를 남용하는 산헤드린 대표자들과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듣고 이해하라고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없을 때 포도원에서 일하기로 동의한 소작농에게 포도원을 빌려준 한 지주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요단강 상류 계곡 전체와 갈릴리 고지대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지주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런 관행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계약에는 생산물의 일정 부분을 소작료로 지불한다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중요한 세부 사항은 포도원 주인이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작인들의 후속 행동은 부재(不在)지주 상황에서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막 12:2)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막 12:3)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막 12:4)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에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막 12:5)


 적절한 시점에 주인은 소작료를 거두기 위해 대리인을 보냈습니다. 대리인은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반면, 농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작성한 '청원서'에 대해 말합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처음 두 명의 대리인에게 수모를 안겨 주고 결국 세 번째 대리인을 살해합니다. 소작료에 대한 주인의 호소에 소작인들은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도전으로 대처하였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종'으로 불렸습니다.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거부한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막 12:6)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막 12:7)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막 12:8)

 

  주인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들을 보내어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주인이 먼 이국땅에 살고 있다는 가정 아래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은 이전에 자신을 대표해서 파견되었던 종에게 거부되었던 존경을 표할 것을 명령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을 살해하고 그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포도원 담장 너머로 던지는 것은 소작인들의 죄악의 심각성을 보여 줍니다. 재산의 압류는 당대의 법적 상황에 의해 조명됩니다. 아들이 도착하자 소작인들은 주인이 죽었고 그의 유일한 상속인이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상속 재산은 누구든지 합법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소유자 없는 재산'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소유권을 먼저 주장한 사람에게 소유권이 우선적으로 귀속됩니다. 이는 지정한 기간 내에 상속을 청구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런 법 조항은 소작인들이 아들을 살해하면 방해받지 않고 포도원을 소유할 수 있다고 가정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소유자 없는 재산'이 될 것이며 그들은 토지의 실제 점유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막 12:9)


 소작인들이 주인이 죽었으니 그 재산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가정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주인은 반란을 일으킨 소작인들을 강제로 진압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에 의지했을 것이며, 그 후 자연스럽게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소작으로 주었을 것입니다. 이 비유의 시작과 끝에서 이사야 5장 1~7절이 암시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모의하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의 궁극적인 심각성을 이해하도록 의도적으로 호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비유의 테두리 내에서 아들을 거부한 필연적인 결과는 결정적이고 파국적인 심판이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막 12:10)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막 12:11)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막 12:12)


 시편 118편 22~23절의 인용문입니다. 이 구절은 성소 건축에서 버린 것이지만 현관의 주춧돌로 판명된 솔로몬 성전 부지에 모여 있는 건물 블룩 중 하나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인용문은 비유에서 예수님의 아들 신분을 확인시켜 주며, 멸시받고 거부당하는 그의 지위와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한 영광스러운 존엄을 대비시킵니다. '건축자들'이라는 표현은 '율법학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W. W. Lane, Mark, 455). 이 본문은 하나님이 자신의 마지막 사자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을 놀라운 능력의 과시로 뒤집어 명백한 패배로 승리로 바꿀 것이라는 경고의 역할을 합니다(참고, 행 4:11; 벧전 2:7).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반역과 불충실함으로 점철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영하는 이 비유는 백성의 지도자로서 실패한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구절의 취지를 너무나 잘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한 산헤드린 지도자들은 2천 년 전에 있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시대 종교 지도자들이 잘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나와 우리는 그들의 잘못과 관계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혹시 나에게 불순종이나 불충성의 모습은 없었는지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금에 대한 질문, 13~17절>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막 12:13)


 성전 현관 한 곳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은 산헤드린의 구성원이거나 각 그룹의 지도자들이 보낸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평판을 떨어뜨리거나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신중하게 고안된 질문을 하였습니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막 12:14)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막 12:15)


 그들이 예수님에게 던진 첫 마디는 힘들고 어려운 질문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이 명한 삶의 방식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을 가르친 진실한 사람임을 예수님 자신에게 상기시켜 줌으로써, 예수님의 대적들은 그로 하여금 자신들이 결정한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려 했습니다. 

 A.D. 6년에 로마가 유대 속주에 처음 세금을 부과한 이래로 세금 문제에 만연해 있던 감정적 트라우마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그 당시 갈릴리 사람 유다는 과세의 서곡이었던 인구 조사에서 노예제 도입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모독을 보았습니다. 열심당원들은 세금 납부를 단호하게 거부했는데 그것은 가이사의 지배를 인정하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세금 문제에 내포된 굴욕에 분개했지만 세금 납부를 정당화했고, 헤롯당원들은 원칙적으로 세금 제도를 지지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의 목적은 예수님을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타협적인 입장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질문의 형식('우리가 바쳐야 하는가, 바치지 말아야 하는가?')은 예수님을 딜레마에 빠뜨리기 위해 교묘하게 고안된 것입니다. 긍정적인 대답은 세금을 로마에 대한 복종의 징표로 여기는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불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대답은 로마 당국의 보복을 불러올 것입니다.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막 12:16)


 예수님은 그 질문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또 하나의 시도라는 것을 인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15절)는 날카로운 질문에는 이해할 수 있는 분노의 어조가 담겨 있습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는 명령은 예수님이나 그의 대적자들 모두 데나리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1세기에 인간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다루고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일반적이고 뿌리 깊은 반대가 있었다는 증거가 거의 없습니다. 16절의 예수님의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이 형상과 글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한 것은 이 동전이 널리 유통되고 사용되어 대표단에게 잘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막 12:17)


 예수님은 대답을 통해 그 형상과 글이 가이사의 것임을 인정했습니다. 가이사의 주화를 받아들이고 사용했다는 것은 그의 권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며, 따라서 세금 납부의 의무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 초상은 주화를 주조한 주권자가 지방에 조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보여 주었으며, 이는 황제가 자신의 초상이 새겨진 주화의 소유자라는 일반적인 이해와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의무가 존재하지만 그 의무는 하나님의 명에 근거한 것입니다(참고, 롬 13:1~7; 딤전 2:1~6; 벧전 2:13~17). 

 예수님은 답변의 첫 부분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함으로써 국가 권위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했고, 자신은 본질적인 신정 국가에 대한 믿음에 반대하고 또한 자신의 사명이 임박한 종말론적 완성이라는 기대에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이사와 하나님을 극명하게 구별함으로써 그는 동전에 새겨진 우상숭배 주장에 암묵적으로 항의했습니다. 국가 권위에는 항상 정해진 기능을 넘어서는 경향,  즉 자기 초월로 이어지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권력에 항상 수반되는 자기 영광의 유혹은 국가와 그 수장을 신격화하는 황제 숭배의 사치스러움에서 특별히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이런 무례한 혼동을 단호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신성한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 대답의 두 번째 부분은 하나님과 가이사에 대한 의무는 구별되지만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더 높은 원칙에 의해 통합되고 지배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전적인 충성을 바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대적자들을 크게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찾아온 자들이 예수님 말씀의 권위에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국가의 권위에 따라야 하지만, 국가의 권위 위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에 더욱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말로 예수님의 지혜를 이기려고 했던 사람들의 지혜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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