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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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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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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성경: 마가복음 2장 13~22절 / 제목: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창세기 39장, 마가복음 9장) 개인 (욥기 5장, 로마서 9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레위기 26~27장


<세리와 죄인의 친구, 13~17절>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막 2:13)


 마가복음 2장 13~17절은 '식탁 교제 논쟁'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감히 하나님의 아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판단할 자격이 없는데도, 마치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권한을 종교지도자들에게 준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서 바닷가로 나가셨습니다. 그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대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처럼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오늘 누구를 대상으로, 어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예정입니까?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막 2:14) 


 예수님께서 레위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레위'의 직업은 세리로서, 세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세리는 정결법상 부정한 직업에 종사한 자들입니다. 유대 집안, 그것도 제사장직을 담당한 레위 지파 출신의 남자가 부정한 직업을 가진 '세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때 레위 마태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랫동안 가졌던 직업(세리)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께 순종하여 자기 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가 된 것은 매우 복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무슨 말씀에 순종해야 할까요? 즉각적인 순종은 신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막 2:15)

 

 레위는 예수님을 따라 나서기 전에, 주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죄인들일지라도 주님께 나온 자들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사람들 즉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만약 세리와 죄인들이 거부를 당했다면 그들은 주님을 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잡수실 뿐 아니라 그들이 주님께 나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을 거부하셨다면 우리 같은 죄인들도 주님께 나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죄인들을 용납하셨음으로, 우리도 주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막 2:16)

 

 바리새파에 속한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먼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신 것을 판단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권한도 없는 자들이 마음대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판단을 한 일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권한이 없는데도 마음대로 판단하고 정죄한 일은 없는지 살펴 봅시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이 죄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비록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납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고 그들이 주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무조건 배척하고 거부한 종교지도자들은 주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분이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종교 지도자들이 감히 주님을 판단하고 정죄한 것은 큰 잘못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예수님은 비난하는 자들에게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17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분이십니다. 그들의 죄를 고쳐주실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인들을 용납해 주시고 친히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7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식도 모르는 분, 18~20절>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막 2:18)


 마가복음 2장 18~22절은 '금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 관행을 가지고 문제 삼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막 2:19)


 예수님은 '신랑과 결혼식 손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신랑과 결혼식 손님은 각각 예수님과 제자들입니다. 결혼 잔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결혼식 손님들이 금식할 수 없는 이유는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결혼식 손님들과 함께 있을 동안'이란 구원의 시대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도래했음을 뜻합니다. 이미 구원의 시대가 왔기 때문에 금식이 아니라, 기쁨과 축하의 잔치가 마땅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미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이 임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금식하며 기존의 관행을 고수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누리는 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 2:20) 


 그러나 예수님께서 금식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결혼식 손님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면, 그 날에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0절). 신랑을 빼앗긴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수난을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시는 분, 21~22절>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막 2:21)  


 '새 옷 조각'과 '헌 옷'은 '새 포도주'와 '헌 부대'와 비교됩니다(21~22절). 시편 102:26~28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옷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이 시편 본문을 인용하는 히브리서 1장 10~12절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낡은 옷과 같은 우주를 접어 버리고 새로운 우주를 펼치실 것을 묘사합니다. 20절에서 헌 옷은 옛 세계 혹은 기존의 질서를, 새 옷은 새로운 세계 혹은 새로운 구원의 질서를 뜻합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으리라."(막 2:22)  


 새 포도주는 새 시대를 상징합니다. 헌 부대는 옛 시대를 의미합니다. 새 옷이나 새 포도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종말론적 시대를 의미합니다. 헌 옷의 헤어짐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한 강력한 종말론적 변화를, 또 옛 질서에 가해진 충격을 강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통치가 옛 질서에 가하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 것입니다. 


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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