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9 06:57

스가랴(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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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9)

성경: 스가랴 81~17/ 제목: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약속

<맥체인 성경 읽기(419)>: 가정(레위기 23, 시편 30) 개인(전도서 6, 디모데후서 2) / <복있는 사람> 성경 읽기: 요한복음 4~5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시어 백성2304074.jpg 을 회복하심, 1~6>

 

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여호와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에 기초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소홀히 여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위해 질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고초를 겪을 때 여호와께서 질투하여 그 백성을 억압과 압제로부터 건지십니다.

그 백성이 범죄함으로 흩어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흩어진 백성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질투하심은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을 억압한 열방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3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3절은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선포합니다. 스가랴 8장에서 그 백성들의 돌이킴과 회개에 대한 언급이 없는 채로, 큰 질투와 분노 가운데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신다고 선포됩니다.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불릴 것입니다. “진리로 번역된 에메트는 문맥에 따라 신실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의 이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에메트’(신실함)는 하나님의 에메트를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신다는 것은 최고의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4절 이하는 여호와께서 시온을 질투하시며 시온으로 돌아오심으로 예루살렘에 이루어질 결과들을 포함합니다. “길거리로 옮겨진 히브리어 단어는 레호브의 복수형인데, 보통 성문 곁에 있는 광장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이곳에서 재판이 벌어지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거기에 늙은 남자들,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입니다. 거리가 평화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소년 소녀들(5)이 가득하며 거기에서 뛰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될 일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마다 늙은 남녀들과 어린 남녀들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은 예루살렘 거리가 이렇게 연약한 이들이 다니기에 충분할 만큼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용의 출처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고 합니다. ‘남은 백성의 눈에 기이하게 보이다라는 문장은 설령 이 일이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일지라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이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불가능함을 의미하며, 놀라움이나 이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기이합니다.

나라가 망하고 긴 세월 동안 낯선 땅에서 포로로 살다가 이제 돌아온 백성들, ‘이 남은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은 기이하게 보입니다. 설령 사람들의 눈에는 여호와의 회복에 대한 말씀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을지언정,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는 결코 기이하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눈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하라, 7~13>

 

7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해 행하실 일들이 선포됩니다. “해가 뜨는 땅은 동편을 가리키고, “해가 지는 땅은 서편을 가리킵니다. 동쪽 지역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상징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서쪽 지역은 애굽을 가리킵니다. 서로 짝이 되어 모든 지경을 의미하는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지역 전체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흩어진 이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십니다.

 

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방으로부터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건지실 것이며, 건져내신 이들을 예루살렘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인도해 내셔서 그들이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돌아온 이들은 하나님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십니다.

마지막에 진리로 표현된 히브리어 에메트는 앞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러한 진리를 닮고 반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이끄시되, 진리 가운데서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기초는 공의입니다. ‘체다카의 근본적인 의미는 올바른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관계는 그분이 이르신 말씀과 행하실 일에 대한 신뢰를 드러냅니다.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날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손을 견고히 하다는 어떤 일을 행하거나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강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손을 견고케 하라는 격려는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와 함께 쓰입니다. 손을 견고히 하라는 격려의 배경에는 현재 진행되는 성전 재건이 있습니다.

스가랴는 손을 견고히 하라는 격려를 통해 이미 시작된 성전 재건을 이루어 가는 손에 힘이 빠지지 않게 더욱 단단히 하여 끝까지 그 작업을 마무리하도록 권합니다. 마침내 성전이 완공했을 때,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스가랴는 손을 강하게 하는 것과 예언자의 선포를 연결시킵니다. 이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이던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던 이들입니다.

그리고 손에 힘이 풀어진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손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손을 강하게 하는 힘은 여호와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예언자들이 선포한 말씀을 통하여 그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10 이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원수로 말미암아 평안히 출입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모든 사람을 풀어 서로 치게 하였느니라

 

이 날은 성전의 지대가 놓인 날이며, 성전 재건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입니다. 이제 갓 시작한 역사이지만, 일단 시작된 역사는 그 전의 날들과 그 후의 날들을 확연하게 구분하게 될 것입니다.

수고하고 애쓴 이들은 그에 합당한 상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참된 상급이요 보상입니다.

그동안 그들의 수고가 결실이 없을뿐더러, 그들의 일상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귀환 공동체의 곤고함은 단지 노력과 수고의 물질적인 부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평안, ‘샬롬의 부재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이와 반대로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또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 다투며 서로에게 대적이 되었으니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투는 현실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소로가 서로에게 대적이 된 현실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11절은 성전 지대를 놓고 난 이후의 현재를 다룹니다. 여기서 옛날과 같이가 가리키는 것은 성전의 기초를 쌓기 전을 가리킬 것입니다. 변화의 근본은 내가로 표현된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전 지대를 놓은 후에 하나님의 선언이 있다는 것은 이 백성들의 회복과 변화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인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저 열심히 땀 흘려 수고한다 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두게 하시는 분임을 인정하고 그 앞에 바로 설 때에야 그 수고한 결실을 취할 수 있습니다.

 

12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평화의 씨앗은 뿌린대로 거두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땅에 제대로 기능하고 하늘이 때에 맞게 이슬을 내리니, 씨앗들이 열매를 맺고 수확이 풍성할 것입니다.

 

13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13절은 백성들의 삶 속에서 맺는 관계에 대해 허락하시는 풍성함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백성이 복이 될 것이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재확인합니다. 12~13절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회복하고 재확인합니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회복은 그들만의 행복이 아니라 열방의 복이 되는 데 있습니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14~17>

 

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너희 조상들은 여호와를 격노케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길로 가지 않고 여호와께서 부르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그 백성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지만, 하나님을 거역한 이들에게는 재앙을 내리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조상들의 죄악이 오늘날에 문제가 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현재를 살고 있는 그 자손들 역시 동일한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그들이 여호와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거역했듯이,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 역시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고집스러운 어깨를 내밀었기에 그들에게 여러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겪은 모든 일은 후손들을 위한 교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하셨으며, 이를 뉘우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백성들이 스스로 가는 길을 뉘우치고 돌이키면, 하나님도 재앙을 내리려 했던 것을 돌이키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겪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뜻을 돌이키십니다.

 

은혜를 베풀다라고 번역된 표현은 14절에서 재앙을 내리다에 해당하는 표현의 반대말이며, 쉽게 풀이하자면 선을 행하다, 좋게하다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바꾸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은 당시 귀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좋게 하신다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좋은 것을 베푸신다면, 그들이 이제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여호와의 새로운 뜻에 대한 말씀은 당연히 두려워 말라는 권면으로 끝맺습니다.

사람들의 두려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현재의 실패와 미래의 불투명이 두려움의 원인입니다. 그에 대해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재앙에서 선으로 바뀌었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을 베풀기로 뜻하셨을진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두려움 없는 삶의 근거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미래도, 결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뜻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8:35~39, 참조).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들은 이미 성전 재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전 재건이 이들이 행할 일은 아닙니다. 성전 재건은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신뢰의 상징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삶의 근본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이 살아갈 삶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시고 좋은 것을 베푸시니, 두려움 없는 이 백성들이 행해야 할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16절 이하의 말씀이 하나님 백성들의 삶과 행실에 대해 알려 줍니다.

16절 이하가 말하는 것은 이미 회복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두려움 없이 이 땅에서 행할 일에 대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은 앞날을 염려해서 공덕을 쌓는 이들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을 믿고 두려움 없이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이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로 뜻을 정하셨고, 이제 이스라엘이 행할 일은 그 하나님이 명하시는 하나님 백성의 삶입니다. 16~17절은 긍정적인 명령과 부정적인 명령을 주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이웃에 대해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이웃들과 살아가는 일상의 현실 속에서 속이지 말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은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진리와 평화의 재판입니다. 성문에서, 재판정에서 올바른 재판이 이루어질 때 참된 평화가 공동체에 임하게 됩니다.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라고 말합니다.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며라고 말합니다. 진리가 없는 재판, 이웃을 대적하는 것은 단지 이웃과의 관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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