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1)
11월 24일
성경: 요한계시록 7장 1~17절 / 제목: 인치심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역대상 19, 20장, 베드로전서 1장) 개인(요나 3장, 누가복음 8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데살로니가전서 1~4장

<하나님의 종들의 인침, 1~8절>
7장은 여섯째와 일곱째 인 사이에 나오는 것입니다. 7장은 두 개의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14만 4천을 인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늘 보좌 앞에 있는 수많은 무리가 누리는 복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계 7:1)
요한은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파괴하는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자연의 힘이 천사의 수중에 있는 것을 묘사됩니다. 네 천사는 땅의 네 모퉁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네 바람을 하나님의 파괴적인 대리자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인침을 받을 때까지 네 천사가 바람을 저지합니다. 바람은 땅이나 바다 위에 불지 못하고, 또 나무를 향해서도 불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계 7:2)
또 다른 천사가 환상에 등장합니다. 그는 동쪽에서 와서 저지하고 있는 네 명의 천사를 향해 하나님의 종들이 인침을 받기까지는 해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3)
천사가 가지고 온 인은 아마도 근동의 왕들이 공적인 문서를 공인하고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던 인장 반지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을 통해, 우리는 이 인이 이마에 남기는 표가 “그 이름[어린 양의]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천사가 가지고 오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살아 있는 신실한 믿는 자들의 충만한 숫자를 뜻합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요한은 인침 받은 자의 수를 본 것이 아니라 들었습니다. 그 수가 이스라엘 각 지파로부터 온 144,000입니다. 이 숫자는 상징적입니다. 열둘이 제곱이 되고 거기에 천이 곱해집니다. 이는 완전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계 7:5)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계 7:6)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계 7:7)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 7:8)
<하늘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누릴 복, 9~17절>
두 번째 환상은 첫 번째와 대조를 이룹니다. 144,000 대신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임박한 박해를 대비해 인침을 받기보다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 소개됩니다(14절). 그들은 승리자의 옷을 입고, 또 축제의 기쁨을 상징하는 것을 듣고, 땅이 아니라 하늘의 보좌에 모여 있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쳐 이르기를 그들의 구원이 하나님과 어린 양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수종자(천사들, 장로들, 생물들)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 환상의 목적은, 이제 곧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으로 들어갈 자들을 향해 영원한 복을 맛보아 알게 해 주는 데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시대의 신실한 자들이 이 최종적 구원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이 환상은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는 큰 무리와 함께 시작합니다. 4장과 5장의 장로들과, 천사들, 생물들, 그리고 천사들은 이제 세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거대한 구원받은 무리 속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시야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사방으로 뻗어 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서 약속하셨던 것처럼, 그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고, 또 바다의 모래처럼 많습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10)
큰 무리는 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 구원은 그들이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얻은 승리의 변화를 능가합니다.
이 큰 무리는 그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어린 양의 “우리 하나님께……그리고 어린 양께,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었도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 7:11)
보좌를 둘러싼 수많은 천사가 성도들의 기쁜 외침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찬양의 칠중 송영을 드립니다. 인류의 구속, 즉 창조에 내재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만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됩니다(눅 15:10).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계 7:12)
두 번의 ‘아멘’은 천사의 송영의 시작과 끝을 장식합니다. 각각의 속성 앞에서 관사가 반복되는 것은 그 의미를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지혜는 이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구속 계획 안에 분명히 보여 주신 신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계 7:13)
장로 중 하나가 요한이 하려는 질문을 미리 알아차리고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선지자가 모른다고 하자, 그는 이들이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라고 대답합니다.
흰 옷을 입은 무리는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이 장면은 구원받은 자들의 완전한 수가 하나님 앞에 서고, 영생의 복이 곧 실현되는 시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 7:15)
이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옷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밤낮 하나님을 섬깁니다. ‘밤낮’은 계속해서 또는 중단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장막을 그들 위에 치실 것이라는 약속은 광야에서의 성막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을 지키고 보호한 것을 말하는 것과 의미가 같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계 7:16)
구원받은 자들의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사 49:10, 참조). 그들이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이 두 가지가 지속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던 고대 사회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육체적 결핍에 대한 약속 이상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온전함에 대한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이 궁극적으로 채워질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하나님의 양떼를 치는 목자로서의 어린 양이라는 개념은 흥미로운 역할 교환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것입니다(계 12:5; 19:15).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것은, ‘토기장이처럼 만국을 산산히 부숴뜨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목자인 어린 양은 자신의 양떼를 생명의 샘으로 인도하며, 땅에서 흘린 눈물의 마지막 흔적까지도 남김없이 닦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인도하셨듯이 미래에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닦아 주시는 눈물은 낭비된 삶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도리어 울다가 갑자기 웃는 어린아이의 눈물처럼, 이 눈물은 구원받은 자들의 얼굴 위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