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6)
11월 30일
성경: 요한계시록 11장 1~14절 / 제목: 두 증인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역대상 28장, 베드로후서 2장) 개인(미가 5장, 누가복음 14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호세아 1~5장

여섯째와 일곱째 나팔 사이의 막간을 만드는 두 개의 주된 환상 사이에서, 우리는 요한이 성전의 울타리를 측량하되 그 바깥쪽은 측량하지 말라는 명령을 듣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성전과 바깥마당 모두를 두 개의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성전과 제단을 측량함, 1~2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계 11:1)
요한은 환상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천사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아 그것을 먹었습니다. 요한은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고,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거기서 경배하는 자들을 세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성전을 측량하는 것은 그것이 보존될 것을 선언하는 상징적인 것입니다. 요한에게서 성전은 문자적인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독교 공동체”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고전 3:16 ~ 17; 고후 6:16; 엡 2:19~22).
믿는 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나 죽음으로부터의 안전이 아닙니다. 영적인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말합니다. 제단이 성소에서 경배하는 자들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이것은 분향단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성전을 측량하기 위해 요한은 “지팡이 같은 막대”를 받았습니다. 요단 계곡에 자라던 대나무 같은 갈대는 측량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고 단단했습니다(눅 7:24, 참조).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2)
성전의 바깥 마당은 이방인의 뜰로 불렸습니다. 이방인의 들과 분리해 주는 장벽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이곳을 넘어오는 이방인은 누구든지 죽게 될 것이라는 위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곧 고난을 받게 될 자들은 진정한 교회 즉 짐승의 표를 거부한 자들입니다. 바깥뜰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성소와 바깥뜰 사이의 구분은 이방인의 적대심에 부과된 한계를 지적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가 소유한 진정한 생명의 원천에는 손을 대지 못합니다. 42개월이라는 기간은 요한계시록에서는 1,260일과 “한 때 두 때 반 떄‘라는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이 표현이 악이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된 한정된 기간을 나타내는 표준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두 증인의 예언 사역, 3~6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계 11:3)
자신의 증인들에게 예언하는 사명을 주신 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방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증인들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들의 사역 기간은 거룩한 성이 짓밟히도록 내어 준 기간과 같습니다. 그들의 사역 기간이 거룩한 성이 짓밟히도록 내어준 기간과 같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4)
요한은 이제 두 증인을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배경은 스가랴 4장에 기록된 그의 예언에 대한 환상입니다.
등잔대에 “금 기름”(12절)을 흘러 보내고 있습니다. 천사가 전해 준 해석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선포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입니다(6절). 하나님의 성령이 그의 선택한 지도자들을 통해 일하시는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지도자들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완성될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계 11:5)
두 증인을 보호하려는 의지(5절)가 그들의 활동을 묘사하기 이전(6절)에 미리 나옵니다. 그들의 예언적인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초자연적인 힘의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처음의 두 무리의 사람들은 선지자의 말로 인해 하늘에서 내린 불에 타버렸습니다(10절, 12절).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6)
두 증인은 하늘을 닫아 그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를 내리지 않게 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물을피로 바꿀 수도 있고, 원하는 대로 어떤 재앙이든 땅을 칠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 7~14절>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계 11:7)
그들의 사역이 마치자마자, 두 증인은 더 이상 육체적인 해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이 그들을 공격하고 죽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때에 교회의 주된 대적자를 대표하는 한 인물을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죽임 당한 표를 가지고 있는 어린 양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짐승입니다. 땅의 왕국과 증거하는 교회 사이에 일어나는 거대한 전쟁을 보여 줍니다. ’증인‘은 순교라는 엄숙한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계 11:8)
순교당한 증인들은 매장되지 않은 채 큰 성읍의 넓은 길가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매장을 하지 못한 것은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큰 성”은 예루살렘입니다.
두 증인은 적그리스도의 손에 죽게 되었으며, 요한의 시대에는 로마의 권력이 적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통치를 함축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계 11:9)
증인의 죽은 시체가 큰 성읍의 길 위에 눕혀 있고, 모든 족속과 나라의 사람들이 그 시체를 봅니다. 시체가 사람들에게 공개된 삼 일 반의 기간은 그들이 예언적 활동을 한 1,260일에 상응합니다.
증인들의 죽은 시체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지키는 신실한 자들의 운명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 11:10)
짐승을 따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괴롭힌 자들이 죽은 것을 깨달았을 때 매우 기뻐합니다. 두 증인이 준 비난(3절)과 육체적인 괴로움(5~6절) 때문에 생긴 고통은 삼 년 반 동안 지속되었지만, 이제 끝났고 기뻐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땅에 사는 자들”은 앞선 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이방 세계를 지칭하는 또 다른 명칭입니다. 이것은 큰 성읍을 모든 땅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뒷받침해 줍니다.
신실한 증인의 증거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진리는 항상 악한 자들의 양심을 괴롭게 해 왔습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 11:11)
그러나 세상의 기쁨은 짧게 끝납니다. 왜냐하면 삼 일 반 이후에 하나님이 생기를 증인들의 죽은 시신에 불어 넣으시자, 그들이 발로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짧게 끝났고, 이제는 두려움이 이 엄청난 사건을 목격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사로잡습니다. 교회의 부활은 하나님이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는 궁극적인 권세를 소유하신다는 확실한 표현입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12)
두 증인은 이제 하늘로부터 나는 큰 음성의 부름을 받아, 놀란 대적들이 모두 쳐다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계 11:13)
증인들이 하늘로 올라가자, 큰 지진이 나서 성의 일부가 무너지고 7,000명의 사람이 죽는데, 이로 인해 남은 자들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초월적인 위엄을 인정하게 됩니다.
지진은 다가올 사건을 문자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묵시적 환상입니다. 무너진 것은 성의 십분의 일인데, 이것은 상당한 규모이지만, 성을 완전히 파괴할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계 11:14)
14절은 요한계시록 10장 1절~11장 13절의 환상에 의한 두 번째 화에서 분리되어 따로 기록되어 있으며, 셋째 화를 선언해 줍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