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7)
성경: 디모데전서 5장 1절~16절 / 제목: 사회적 책임
맥체인 성경 읽기(11월 8일): 가정(열왕기하 21장, 히브리서 3장) 개인(호세아 14장, 시편 139편) / 날샘 성경 읽기: 요한복음 16~17장

(사진 제공: 유재만 교수, 예비역 해군 제독)
<대원칙, 1~2절>
디모데는 젊은 사람이지만 성별(남자와 여자)과 연령(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섞여 있는 다양한 회중을 돌봐야 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디모데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훈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매서운 책망이 아니라 권면을 하라고 말합니다. 꾸짖는다는 말은 ‘에피플레쏘’를 번역한 것으로 ‘매서움과 엄격함’을 의미합니다.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과부에 대하여, 3~16절>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시 68:5). 하나님은 또 ‘고아와 과부를 위해 신원하시는’ 분이십니다(신 10:18). 먼저 과부를 존중하라고 말합니다. ‘참 과부’는 ‘참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를 말합니다.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거나 지참금이나 자신을 돌보아 줄 친척이 없는 궁핍한 과부를 의미합니다.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자신을 돌보아 줄 친척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러한 자들은 선지자이며 과부였던 안나처럼(참조, 눅 2:36~37),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기도와 간구를’ 하게 됩니다(5절).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이런 경건한 자들과 아주 다르게 ‘일락을 좋아하는’ 과부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한 자는 ‘살았으나 죽었으며’(6절 하),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들입니다.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교회가 과부를 돌보는 일에 물질적이며 영적인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조건은 궁핍함이고, 영적인 조건은 경건입니다.
궁핍한 과부를 돌보는 것은 교회의 책임입니다. 디모데 개인의 사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과부를 돌보기 위한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해야’ 합니다(7절 하).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과부의 ‘목록’, ‘표’ 또는 ‘명부’(9절 상, 11절)와 앞의 과부들과는 사뭇 다른 자격(9절 하~10절), 또 봉사에 헌신하기 위해 독신으로 계속 남아 있겠다는 서약(12절), 그리고 ‘젊은 과부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원칙(11~15절) 등이 있습니다.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명부에 올리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자격을 제시합니다. 연로함, 결혼 생활의 신실함, 그리고 선행입니다. 첫째, 나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죄 아니하고’(9절 상)라고 말합니다. 둘째,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여야 합니다(9절 하). 셋째, 명부에 올리기 위해서는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과부여야 합니다(10절).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이 같은 명부에 올릴 수 있는 과부의 조건을 살펴볼 때 젊은 과부들은 해당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11절 상)라고 말합니다.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젊은 과부를 명부에 올리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봉사의 책임에 전심을 기울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에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13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으라’(14절 상)고 말합니다.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가족에 대하여, 4, 8, 16절>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과부들을 재정적으로 돌보는 일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친족들이 먼저 과부들을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들이 이런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을 돌보아 준 부모와 조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바울은 다시 한번 가족이 그들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연적 본성도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과부들을 돌보는 책임은 로마의 법에도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친족이 과부를 돌보는 것은, 교회의 짐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