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33)

마가복음(33)
3월 9일
성경: 마가복음 11장 12~26절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출애굽기 20장, 누가복음 23장) 개인 (욥기 38장, 고린도후서 8장)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 12~14절>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막 11:12)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막 11:13)
이 사건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던 다음 날에 일어났습니다. 에수님께서 시장하셨다(12절)는 것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는지 보려고 나무에 갔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14절에 나오는 선언의 근거로 인용된 것은 예수님의 시장하심도 아니고 열매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도 아니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감람산 동쪽에서 3월 말이나 4월 초에 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는 실제로 잎보다 먼저 달리는 녹색의 햇무화과만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는 맛이 좋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먹지 않습니다. 그 열매는 6월이 되기 전에는 익지 않으며, 모두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면 무화과나무에는 잎만 남습니다. 이것은 13절에 묘사된 상황과 부합하는데, 여기서의 요점은 멀리서 본 나무의 모습과 실체 상태의 차이에 있습니다.
무화과의 계절이 아니었다는 것은 계절이 유월절이 들어 있는 니산월이라는 봄의 달임을 전제로 합니다. 13절의 마지막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암시된 구절은 미가 7장 1~6절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정의가 없음을 한탄하며 그 땅을 수확한 포도원에 비유하며 '나는 처음 익은 무화과를 원한다'(미 7:1)라고 외쳤습니다. 더 포괄적인 해석을 제공하는 것은 거짓 서기관과 제사장들로 인해 그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맥락에서 나타나는 예레미야 8장 13절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거두려 할 때에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없고 무화과나무에는 무화과가 없으며 잎사귀조차 시들고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그들에게서 없어졌도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막 11:14)
<성전 안에서 상인들을 쫓아내다, 15~19절>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막 11:15)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막 11:16)
이방인의 뜰은 성전 경내의 내부 장소로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구획으로 높은 칸막이 벽으로 성전 경내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은 앞뜰을 통행로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특정 규정에 의해 보호되었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거룩한 의미가 없는 것을 여기고 있었습니다. 로마 화폐가 유통되고 있는 나라에서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30장 13~16절이 명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매년 성전세를 납부해야 했습니다. 필요한 환전을 위해 아달월 25일, 즉 니산월 초하루 5일 전에 성전 앞뜰에 환전소가 설치되었습니다. 성전에서는 니산월 1일에 탁자가 철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달월 25일과 니산월 1일 사이, 즉 유월절 2주 이상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게 됩니다.
비둘기는 가난한 자들에게 인정된 제물이었습니다. 여자의 정결, 나병환자의 정결을 위해 비둘기는 제물로 필요했습니다. 동물 판매를 위한 매대 및 포도주, 기름, 소금과 같은 제사에 필요한 필수품을 파는 매대의 설치는 이방인의 뜰을 가축 시장으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유대교로 온전히 개종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사용하기 위해 성별된 공간의 신성함을 무시하는 것에 경악했습니다.
예수님은 상인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고, 성전 뜰을 통행로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성전 경내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앞뜰을 깨끗이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의로운 이방인들을 자신의 성전에 모아 예배하게 할 '그 날'의 상황에 대해 증언하셨습니다(참조, 슥 14:16).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 11:17)
이는 이사야 56장 7절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이 예언은 하나님이 자신의 집을 위해 계획한 운명과 기능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과 모든 열방에 대한 관대한 목적을 설명하는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지칭한 것은 오래된 일지만, '모든 민족을 위하여'라는 구절은 이사야 56장 7절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습니다(막 11:17, 참조).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뜰에서 상인들을 쫓아낸 것은 하나님이 승인한 권리와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앞뜰을 장터로 사용함으로써 사실상 이방인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성전한 구역이 기도의 장소로 사용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예레미야 7장 11절을 상기시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부각시킵니다. '너희는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진술에 완료시제는 제사장 당국의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성격의 것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앞뜰에서 쫓아내심으로써 이방인들이 예배할 수 있도록 허락된 장소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막 11:18)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막 11:19)
성전을 오용한 제사장들에 대한 예수님의 정당한 책망이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 처형으로 직결되는 운명적인 결정의 직접적인 계기로 제시됩니다. 유대 당국자들에게 상인들을 쫓아낸 사건은 심각한 혼란의 근원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로 보였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적대적인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사람들은 이 인상적인 권위의 표시에 매료되었습니다.
<마른 무화과나무, 믿음과 기도, 20~25절>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막 11:20)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막 11:21)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뜰에서 상인을 쫓아내신 사건을 마무리하십니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렸다는 것은 나무가 완전히 죽은 것을 보여줍니다(14절). 앞으로 아무도 그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없을 것임을 보여 줍니다(14절). 나무가 말라 죽은 것은 임박한 심판에 대한 생생한 경고로 작용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없음) (막 11:26)
25절은 기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믿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용서하려는 의지도 기도의 효능을 조건으로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 화해하고 연합한 형제들에게 속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