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30)

마가복음(30)
3월 6일
성경: 마가복음 10장 32~45절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출애굽기 17장, 누가복음 20장) 개인 (욥기 35장, 고린도후서 5장)
<수난에 대한 세번째 주요 예언, 32~34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막 10:32)
에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수난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였으며, 예루살렘과 성전으로 '올라간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고난 받으실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막 10:33)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으심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예언을 하셨습니다. 고난 받는 의인이 잔인하게 조롱당하는 시편 22편 6~8절 및 의로운 종에게 경멸의 표시로 채찍질과 침을 뱉는 것을 언급한 이사야 50장 6절의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적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받아야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당국자들에 의해 정죄를 받으시고 이방인에 의한 사형 선고를 받으실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넘겨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동족들에게 멸시를 받을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주님을 조롱(막 15:20)하고, 침을 뱉고(막 15:19), 주님께 채찍질(막 15:15; 요 19:1, 참조)할 것입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사형 선고에 항상 채찍질이 수반됩니다.
<계급, 우선순위, 섬김, 35~45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막 10:35)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수난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서도 제자들은 주님께 부당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말씀하셨지만(막 9:35~37, 10:42~45, 참조).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37절)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윗 왕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예로운 자리에 계실 것이며, 심판자로서 보좌에 앉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자기들은 주님 때문에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는 자리에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제자들처럼 예수님 때문에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이며, 지금 우리가 주님 때문에 무엇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막 10:39)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요청하는 것은 주님의 영광에 필수 조건인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난과 죽음입니다. 잔과 세례라고 말씀하셨습니다(39절). 예수님의 수난에서 잔과 세례는 인간의 죄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제물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잔을 나눈다는 것은 그와 운명을 함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38절의 잔은 심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셔야 할 잔은 죄인을 대신하여 짊어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입니다(참조, 막 10:45; 14:24). 세례는 재난이나 위험에 휩싸이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을 세례라고 불렀던 것은(눅 12:50, 참조),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례 요한의 회개의식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W. W. Lane, Mark, 411). 요한은 그 의식을 '세례'라고 부르며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명시적인 맥락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세례가 죄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표현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세례는 메시아적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할 수 있나이다'(39절)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39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높아지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사도 가운데 최초로 순교자가 됩니다(행 12장, 참조).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였으며, 사도 가운데 맨 마지막에 죽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 되었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주님이 마시는 잔과 받는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 10:40)
사람을 영광의 자리에 앉히는 것은 아버지의 특권이며, 야고보와 요한은 하나님이 준비시켜 온 사람들에게 그 자리가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막 10:41)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막 10:42)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막 10:43)
다른 열 제자는 분노했습니다. 이들 또한 자신의 위계를 지키려 애를 쓰고 있었고 두 형제가 자신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의 통치자들의 행동과 제자도에 합당한 섬김과 희생에의 복종을 대비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의 소명을 세상의 통치 질서와 의식적으로 대비시키십니다. 43절과 44절은 종과 노예를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동일시합니다. 제자들의 공통된 삶의 질서는 섬김의 형태로 표현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는 계급과 위대함의 문제를 섬김의 과제로 바꾸어 놓습니다. 즉 섬김을 통해서만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돌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