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6)
1월 18일
성경: 히브리서 9장 23~28절 / 제목: 오신 예수님 오실 예수님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창세기 19장, 마태복음 18장) 개인(느헤미야 8장, 사도행전 18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출애굽기 12~14장

<속죄 제물로 자신을 드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 23~26절>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히 9:23)
옛 언약에서 피의 중요성이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적용됩니다. 이 둘 사이의 모형론적 관계가 부각됩니다. 구약의 제사는 지상의 성소와 연관됩니다. 그리스도의 제사 즉, 십자가 죽으심은 천상의 성서와 연관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다른 동물들을 제물로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제사는 단번에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과 ‘천상의 것들’을 명확히 대조합니다(23절).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23절). ‘모형들’은 ‘하늘들에 있는 것들’을 본따서 만든 지상의 모형들을 말합니다. 19절, 21절에서 언급된 장막의 용품들, 책 그리고 백성들까지 포괄하는 것이 모형들입니다. 장막과 용품들과 백성들이 피와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로 정결하게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천상의 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제물들로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23절). ‘천상의 것들’은 지상의 ‘모형들’과 대조되는 천상의 실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실체인 ‘천상의 것들’에도 성소인 ‘하늘’ 자체뿐 아니라(24절) 그 하늘에 속한 새 언약의 백성들까지 포함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새 언약의 백성은 거룩한 하늘의 성소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참조, 14절). 그런데 ‘천상의 것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제물들’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은 제물들’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십자가 죽음을 지칭합니다.
24절은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 천상의 것들에 속한 새 언약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신 궁극적 목적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그 예표의 실체인 참된 지성소, 곧 ‘하늘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 ‘예표’는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손으로 만들지 않은 실체에 비해 열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들어가신 것은 ‘승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인 ‘하늘 그 자체’에 들어가신 목적은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기’ 위함입니다(24절). 그분은 ‘이제’ 당신의 피에 의지하여 지성소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분께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는 목적은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시고, 간구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라 하나님 앞에 감히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5)
지상의 대제사장은 ‘다른 것의 피로 해마다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앞서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다른 것’이 아니 당신의 피로, ‘해마다’가 아니라 단번에 땅의 ‘지성소’가 아니라 하늘 자체에 들어가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26)
‘그분께서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아야 하셨습니다.’(26절) ‘고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지칭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단회적인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죄를 제거하시려고 세상 끝에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단회적 성육신이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죄를 제거하시려는’ 것입니다. ‘죄를 제거함’은, 단순히 죄의 용서를 뜻하기보다는 죄 자체의 제거 또는 폐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 27~28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제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단회성과 최종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한 번’이 이제 인간의 죽음과 관련하여 사용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 죽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상에서 인간의 죽음이 그 자체로 진정한 끝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 참으로 심각한 것은 ‘그 뒤에 심판이 있다’(27절)는 것 때문입니다. 심판은 인간의 죄 때문이 명백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한 번’ 죽으셨습니다(28절).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죄를 짊어지시려는’ 것이었습니다(사 53:12, 참조).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를 없애시려는’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26절). 그 죄가 ‘많은 이들의 죄’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한편 인간의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는 데 반해, 그리스도의 죽음 뒤에는 심판이 아니라 ‘두 번째 나타나심’, 곧 재림이 있게 됩니다(28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완성된 구원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구원’이 주어지는 대상은 ‘자신을 고대하는 자들에게’ 한정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그분을 고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사역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