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 / 잠언(3)
9월 4일
성경: 잠언 16장 1~17절 / 제목: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사무엘상 28장, 고린도전서 9장) 개인(에스겔 7장, 시편 45, 46편) 복있는사람 성경읽기: 잠언 25~27장

<여호와의 주권, 1~9절>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인간이 하려고 어떤 일을 꾸미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느냐 아니냐는 궁극적으로 여호와께서 하십니다. 인간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을 쓸모없다거나 잘못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뭔가를 이루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의 경영이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인간의 모든 인식과 행위는 여호와에 의하여 판단됩니다. 우리의 내적 동기에 대한 심오한 반성을 요청합니다. 그 길이 바른 길인지 아닌지에 대한 최종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여호와는 심령을 재는 분이십니다. ‘감찰하다’는 히브리어는 ‘티켄’으로 ‘무게를 재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가 심장을 재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행위의 모든 동기는 여호와에 의하여 낱낱이 파악됩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여호와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므로, 신자는 어떤 일을 할 때 여호와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그가 생각한 바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 맡기다”의 히브리어는 ‘갈랄’ 즉 ‘구르다’입니다. 직역하면 ‘여호와께 굴러가라’는 의미입니다.
즉 일의 종착점까지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행할 때, 신자는 여호와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해야 합니다. 신자는 그의 삶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을 여호와께 맡기면 ‘생각한 바’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여호와께서는 만물을 원인과 결과 사이의 상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악한 자들은 악한 심판의 날을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악한 자들은 심판의 날에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 16:5)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미워하다’의 히브리어 ‘토에바’는, ‘가증스러운, 역겨운’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죄에 사용됩니다. 우상 숭배의 죄는 가증스러운 것으로,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미워하시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 16:6)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죄 가운데 노출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마음의 중심에 두는 교만의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그런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자와 진리로 죄악이 속해집니다. ‘인자’는 ‘헤세드’입니다. 이는 ‘친절, 자비, 인애’를 뜻합니다. 헤세드는 권리와 의무에 의하여 정의된 관계에 의해서 발생하는 신실한 친절을 말합니다.
진리는 ‘에메트’입니다. ‘확실해지다, 안전해지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스러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믿고, 깊은 신뢰의 마음을 갖는 데에 있습니다. 또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나오는 두려운 마음은 평안이고 확신이며 기쁩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인생길이 여호와의 은혜 안에 있다면, 그 원수와도 화목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수와도 화목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면,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며 용서하며 화목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기쁨의 가치는 이 세상의 모든 미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크고 강합니다.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잠 16:8) 공의를 가진 적은 소득이 정의롭지 못한 많은 소득보다 낫습니다.
히브리어 단어 ‘체다카’와 ‘미쉬파트’가 나옵니다. ‘정의’와 ‘공의’입니다. 율법의 핵심이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물질적인 부를 확장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정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이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왕에 대한 잠언, 10~17절>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잠 16:10) 왕의 말이나 결정을 히브리어 ‘게셈’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평결, 결정’을 의미합니다. 즉 왕의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과 같아서 재판할 때에 정의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왕의 재판이 무오하다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왕은 공의의 임무를 맡았음을 강조합니다.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잠 16:11) ‘저울’은 시장에서 무게를 재는 기구입니다. 저울의 눈금을 저울추로서 조정하면서 무게를 잽니다. 저울의 생명은 공정함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공정함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저울의 주인은 여호와이십니다.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잠 16:12) 왕이 피해야 할 것은 ‘악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왕은 여호와의 대리자입니다. 악행은 공의와 정의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왕의 임무는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잠 16:13) 왕이 기뻐하고 사랑해야 할 것은 ‘의로운 입술’과 ‘올바른 말’입니다. 이것은 공의와 정의를 말합니다. 의로운 말을 하고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 즉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기뻐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들과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잠 16:14) 왕의 평결이나 결정은 사람의 생사를 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권의 사용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잠 16:15) 왕의 은혜를 입게 된다면, 사형선고를 받은 자라도 살 수 있습니다. ‘왕의 얼굴의 빛’은 ‘왕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왕이 억울하게 죽음에 처한 자를 살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것은 정의의 회복이며 왕의 은혜를 쌓는 일입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잠 16:16) 지혜와 명철을 얻는 것이 금과 은을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지혜와 명철이 없는 물질적인 부는 사람을 욕심쟁이로 만들어 탐욕의 노예로 만들 뿐입니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잠 16:17) 정직한 사람은 악을 떠나는 사람과 같으며, 대로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바로 자기의 생명을 지켜내는 자입니다. 율법을 따라 사는 삶, 지혜와 명철을 따라 사는 삶에 생명이 있습니다.
<김일국 목사(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