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1)
성경: 갈라디아서 3장 23절~4장 7절 / 제목: 율법과 그리스도
맥체인 성경 읽기(12월 19일): 가정(역대하 22, 23장, 요한계시록 10장) 개인(스가랴 6장, 요한복음 9장) / 날샘 성경 읽기: 히브리서 12~13장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 3장 23~29절>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갇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낱말 ’푸루레오‘(phroureo)는 ’무장한 파수를 시켜 지키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깥으로 부터의 적을 막기 위해 파수한다는 의미와 안에 있는 주민의 도망이나 탈주를 막기 위해 지킨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감금하다‘(순클레이오)라는 단어와 비슷한 말입니다.
신영역성경의 번역문을 따르면 ‘우리는 율법이라는 감옥 속에 단단히 갇혀 있던 죄수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까지, 그리고 믿음의 때까지 말입니다.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헬라어 ‘파이다고고스’는 문자 그대로 ‘개인 교사’ 즉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자신의 신분은 노예였지만 그 임무는 ‘유년 또는 소년의 학교 출입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파이다고고스’ 즉 ‘초등교사’는 교사였다기 보다는 버릇을 가르치는 사람(disciplinarian)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감옥의 간수나 어린 아이의 버릇을 가르치는 사람 또는 개인 교사와 같은 것일까요? 율법은 우리들에게 행할 일과 행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말해 줌으로써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며 또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복종 했기 때문에 그 율법의 정당한 판결(정죄) 아래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아래‘(22절)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율법 아래‘(23절), 그리고 ’저주 아래‘(10절) 즉 ’율법의 저주 아래‘(13절)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꾸짖고 처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 억압을 영구하도록 놓아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 가운데서 율법을 주시고 그를 통해 약속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도록 하셨습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습니다(23절).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24절).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지금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 받은 상태나 감금된 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26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와 연합되어 있으며 우리들의 통한(痛恨)의 범법(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용납되었습니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예복처럼(as a garment) 입었다‘라고 신영역성경이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토가 비릴리스‘(toga virilis: 로마 사람들이 16세가 된 소년에게 성인의 표시로 입혀주었던 예복)를 두고 하는 말인데, 이는 한 소년이 성년에 들어갈 때 이미 그가 성장한 사람이라는 표시로 입던 것입니다.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며,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로 옷입었으며‘ 또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습니다(26, 27절). (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다 하나입니다(28절). (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가 될 것입니다(29절).
<율법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 4장 1~7절>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바울은 율법 아래 인간은 유아기 또는 미성년기의 상속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가 명목상으로는 모든 소유의 주인이지만 미성년기에는 ’노예보다 부유하지 못합니다.‘ 그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맡겨져 있으며, 그들은 그의 ’인격과 재산을‘ 관리합니다. 그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는 상속자이므로 사실상 주인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리기 때문에 종 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또한 그는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2절) 이 굴레 가운데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인간은 약 1,300년 동안 율법 아래 얽매인 생활을 했습니다. 모세 때부터 예수님 때까지입니다. 자녀가 성년에 접어들면 후견인들로부터 해방시켜 약속을 누리게 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때가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의 기한을 ‘때의 충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속량’과 ‘입양’ 두 가지입니다. 단순히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예를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저주를 담당하신’ 죽음으로 그 구속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보내신 그 분은 그 일을 위해 완전히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 그의 성령을 우리 마음 속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들어오신 성령은 즉시 ‘아빠(압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아빠’는 ’아버지‘의 축약형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자신께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기도 가운데 사용하는 말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우리의 기도를 도우심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신 것은 ’우리가 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6절).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종이 아니요 아들로서, 유업을 이을 자가 된, 지위의 변화는 하나님을 통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상속자, 곧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자랑(공로)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그의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서인데, 하나님은 먼저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고 그 후에 당신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내주(內住)하도록 보내셨습니다.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