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41)

by 주인장 posted Ma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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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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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41)

3월 19일 

성경: 마가복음 13장 28~37절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출애굽기 30장, 요한복음 9장) 개인 (잠언 6장, 갈라디아서 5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마가복음 13~14장 


<무화과나무의 교훈, 28~31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막 13:28)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막 13:29)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의 나무와 달리 무화과나무는 겨울에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이른 봄에 꽃이 피는 아몬드나무와 달리 무화과나무는 나중에야 생명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런 특수성에 호소합니다. 즉 수액이 흘러 무화과나무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하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계절이 가까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시작점과 필연적인 순서의 관점에서 무화과나무의 싹이 트는 것과 여름을 연관시킵니다. 무화과나무가 푸르러지면 여름이 다가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람산은 무화과나무로 유명했는데, 이 나무는 높이가 6미터에서 9미터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직전에 이 가르침을 주었다고 할 때, 가지가 연하고 잎사귀가 돋아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제대로 관찰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관찰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라는 권면을 강화하셨습니다. '문 앞에 가까이 이르렀다.' 성전을 더럽힐 신성모독의 재앙(14절)은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로 덮이는 순간 여름이 임박한 것처럼 성전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제자들이 알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성전에서 일어날 재앙은 전례 없는 환난을 피해 도망치라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막 13:30)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시대 세대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에서 절정에 이르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대격변으로 파괴되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요구, 32~37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예수님은 깨어 있어야 할 책임을 강조하시며 대답을 마치셨습니다. 깨어 있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개입이라는 중차대한 순간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 날'은 예언서에서 사용됨으로써 거룩한 의미를 갖게 된 문구를 연상시킵니다. 주의 날에 하나님의 현현과 연관된 것처럼, 인자의 오심인 '파루시아'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권능을 가지고 영광스럽게 나타날 그 날이나 그 시간을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과 성전 멸망의 전조 사건이 그 세대의 경험 속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마가복음 13장 30절과 32절 사이의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순간을 알 수 없음을 강조하는 32절과 관련하여 또 다른 비교가 전개됩니다. 30절과 32절은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사건과 주님의 날이라는 두 가지 다른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강조점은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라는 수식 어구가 아니라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날짜 계산이 아닌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내시는 데 있습니다. 인자와 천사들이 '그 날'을 모른다면, 그것은 그 날의 도래를 예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과 교회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막 13:33)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막 13:3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 13:35)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 13:36) 


 이 권면은 결정적인 순간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날과 그 때', '결정적인 순간', '집주인이 돌아오는 순간'이라는 표현은 예측할 수 없는 신적 개입의 순간과 동일한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을 알 수 없기에 끊임없는 경계가 필수적입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막 13:37)


 이 의미심장한 진술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종말론적 담론을 촉발시킨 질문을 개인적으로 던진 마가복음 13장 3절을 상기시킵니다. 깨어 있으라는 권면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위를 위임한 제자들과 교회 전체의 구분을 초월하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음을 암시합니다. 일차적으로 제자의 의무인 것은 이차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책임입니다. 각 구성원은 '자신의 일'이 있으며, 그 일을 완수함으로써 깨어 있어야 할 의무를 이행합니다. 깨어 있음은 모든 신자의 책임이며,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는 유일한 보증을 제공합니다. 33절의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는 명령과 35, 37절의 관련 요구는 5, 9, 23절의 권면이 절정에 이르게 합니다. 계속해서 깨어 있으라는 것을 강조함은 37절의 마지막 요구가 마지막 날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전 권면들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 핍박, 주님의 재림 지연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대 동안 교회의 지속적인 삶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영광 중에 나타날 때는 알 수 없지만, 그 분이 오시리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교회는 그 재림의 확실성 안에서 깨어 있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