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7)

by 주인장 posted Mar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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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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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27)

3월 2일

성경: 마가복음 9장 38~50절 / 제목: 우리를 위하는 사람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 (출애굽기 13장, 누가복음 16장) 개인 (욥기 31장, 고린도후서 1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주의 이름으로 쫓아내는 자, 38~42절>


 "요한은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막 9:38)


 제자 요한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과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금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제자들이 불편하게 여긴 것은, 예수님의 권능과 이름을 행사하는 권한을 그들이 위임받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막9:39)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 9:40)


 예수님은 열두 제자의 편협한 배타주의를 개방적이고 관대한 정신에서 반대했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권위를 남용한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능력이 없는 곳에서 예수님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9:41)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은 환대입니다. 물 한 그릇이라도 그 사람이 제자이고 예수님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의미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사절은 그 사람 자신과 같고, 사절에게 한 일은 그를 보낸 사람에게 한 일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물 한 그릇을 주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믿음과 순종의 표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막 9:42)


  이 준엄한 경고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자들의 마음에 각인시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은 주 예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 속하였고, 영접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이 실족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 생생한 묘사는 제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도의 까다로운 요구사항, 43~50절>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없음)."(막 9:44)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5)

 "(없음)."(막 9:46)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몸의 지체에 대한 과격한  자기 처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종말론적 틀 안에서 행해진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옥으로 떠나는 것과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 사이의 뚜렷한 대조는 최후의 심판을 전제로 합니다. 이때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결과를 수반합니다. 

 예수님께서 손과 발과 눈에 대해 말한 것은 이것들 모두가 죄를 짓는 데 역할을 하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지체들은 어떤 사람이 행위를 하고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자라고 구체적으로 특징짓습니다. 사람을 최후의 심판에서 최종적으로 거부당하게 할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 손이나 발을 자르거나 눈을 뽑아야 한다는 급진적인 요구는 육체적 생명의 상대적 가치와 하나님만이 부여한 참되고 썩지 않는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병치시킵니다. 예수님은 소유물이나 가족 및 생명 그 자체까지도 주님을 따르는 데 방해거리가 된다면 그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여기서는 몸의 지체가 저지르는 죄악 된 행동을 완전히 희생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9)


 모든 제자는 하나님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롬 12:1, 참조). 구약에서 성전에 드리는 제물에는 소금이 수반되어야 했습니다(레 2:13; 겔 43:24; 출 30:35, 참조). 제자들은 제물처럼 소금 치듯 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같은 시련을 통해 일어날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모든 것을 깨끗이 제거하실 것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팔레스타인의 삶에 대한 두 가지 관찰이 배경이 됩니다. '세상은 소금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는 소금이 부패로부터 음식을 보존해 주었기 때문에 고대 세계에서 삶의 필수품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반면 대 플리니우스(Priny the Elder)는 이미 사해의 소금이 맛을 잃고 무미건조해질 수 있음을 관찰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소금에 대한 논리는 제자도의 까다로운 요구 사항을 제시하는 맥락에 따라 해석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세상에서 사람들에 대한 종말론적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의 생명을 의미할 수 있는 소금과 같은 특성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소금은 제자의 독특한 특성을 상징하며,  그 특성을 상실하면 제자는 무가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에 대한 제자의 충성만이 그 특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맛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맛을 잃은 소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