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8)
1월 9일
성경: 히브리서 5장 11절~6장 12절 / 제목: 영적 성숙을 위해 나아가라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창세기 9, 10장, 마태복음 9장) 개인(에스라 9장, 사도행전 9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창세기 31~33장
<장성한 자의 비전, 5장 11절~6장 8절>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히 5:11)
멜기세덱에 대하여 가르치려고 하지만 사람들이 오랫동안 둔한 상태로 머물러 있고, 성장을 멈추고 뒷걸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제를 깨닫게 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못하는 둔한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사람들의 둔한 상태를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신자들에게 기대되는 장성함은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되는 것, 곧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다시 누군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인 요소들’을 가르침 받아야 할 필요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성경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가르침과 예언을 포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인 요소들은 하나님의 다양한 계시에 기초한 기독교의 초보적인 가르침 전반(全般)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갓난아이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교육적으로 초보적인 수준을 비유하는 데 ‘젖’을 먹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단단한 음식’은 ‘선생들’이 갖추어야 할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히 5:13)
‘젖을 먹는 자’는 ‘갓난아이’(‘네피오스’)입니다. ‘갓난아이’는 14절의 ‘장성한 자’와 대조를 이룹니다. 갓난아이이기 때문에 ‘의의 말씀’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의의 말씀’은 12절의 ‘단단한 음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젖이 갓난아이를 위한 것이라면,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14절). ‘장성한 자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히 6:1)
갓난아이 상태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초보적인 가르침을 떠나자’라고 촉구합니다. 그 의미는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초보적인 수준에서 넘어서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장성함으로 나아가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1절).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 6:2)
갓난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장성함’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믿었는데 여전히 ‘갓난아이’의 상태에 있는 것을 옳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씻는 의식들에 관한 교훈과 안수’입니다(2절). 세례를 포함하여 구약성경에 규정된 다양한 ‘씻는 의식들’을 통칭합니다. ‘안수’는 초대교회에서도 축복, 치유, 파송을 위해서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2절). 그리고 ‘기초를 다시 닦지 말자’라고 촉구합니다(2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6:3)
그러면서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장성함에 이르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히 6:4)
1) ‘비췸을 받고’, 2) ‘맛보고’, 3) ‘참여한 자가 되고’, 4) ‘맛보고’라는 네 개의 헬라어 분사가 사용됩니다. 그들은 ‘한 번 비췸을 받은’ 자들입니다(4절). 여기서 ‘비췸을 받음’은 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입니다.
다음, 그들은 ‘천상의 선물을 맛본’ 자들입니다(4절). ‘맛보다’는 경험을 뜻하는 것입니다. ‘천상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선물을 말합니다.
또한, 그들은 ‘성령에 참여한 자들’입니다(4절). 그들은 성령을 통해 주어진 다양한 기적들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히 6:5)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함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입니다(5절).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6)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한 자들이 배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합니다. 믿음을 의도적으로 버리는 것 또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배교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배교한 잗ㄹ은 ‘회개에 이르도록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6절). 의도적으로 회개를 거부한 자들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히 6:7)
땅에 ‘자주 내리는 비’는 영적 유익을 반영한 것입니다. 좋은 땅은 비를 흡수하여 농부에게 ‘유익한 농작물’을 생산하고, 그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습니다(7절).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8)
나쁜 땅은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고서도 정작 ‘가시와 엉겅퀴’를 생산하고, 그 결과 ‘저주를 받게 되어, 그 끝은 불태워지는 것’입니다(8절). 나쁜 땅은 영적 유익을 누리고도 배교한 자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산의 결과입니다. 처음에 누리는 영적 유익은 동일하지만 차이는 그 결과에서 드러납니다.
배교의 위험을 경고하는 가르침은 자신들이 영적 위험에 직면해 있는 데도 그 위험을 자각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어집니다. 그 위험한 상태는 배교로 귀결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약속에 참여하는 성도, 9~1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히 6:9)
경고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것들’을 확신합니다(9절). 그렇다면 밭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7절)은 ‘구원’을 지칭합니다. 경고와 확신에 찬 격려의 균형은 영적 위기에 처한 성도들을 돕는 목회자들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긍정적인 확신의 근거는 그들의 ‘행위’와 성도들을 위한 섬김입니다(10절). 그들은 고난의 큰 싸움을 참아 내었는데, 곧 비방과 환난을 당해 구경거리가 되었고, 그러한 일을 당하는 자들의 동료가 되었으며, 갇힌 자들을 동정하였고,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쁨으로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행위를 기억하고 계십니다(9절). 하나님은 사람들이 영적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을 잘 알고 또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히 6:11)
사람들의 ‘소망’(11절)과 ‘믿음’(12절)에 대해서 말합니다. 원하는 것은 ‘동일한 열심을 보여 주어 끝까지 소망의 성취에 이르는’ 것입니다(11절). ‘동일한 열심’은 ‘사랑’, 곧 그들의 행위와 성도들을 위한 봉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열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열심의 목표는 ‘끝까지 소망의 성취에 이르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열심히 그들이 소망하는 것의 성취, 곧 장성함과 완전함 그리고 결국에 얻는 구원(9절)을 얻게 해 줄 것입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
이렇게 한다면, 그들은 ‘둔해지지’ 않을 것입니다(12절). 둔한 상태에서 벗어난 자들은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 상속받는 기업은,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구원입니다. ‘약속들을 상속받은 자들’의 특징은 ‘믿음과 인내’입니다(12절).
오늘 우리는 믿음과 인내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약속 받았습니다. 오늘의 고난과 어려움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