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3)

by 주인장 posted Jan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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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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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히브리서 210~18/ 제목: 인간과 동일하게 되신 아들과 그분의 대제사장직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창세기 3, 마태복음 3) 개인(에스라 3, 사도행전 3)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창세기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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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형제, 10~13>

 

히브리서 1장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히브리서 2장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창시자’(10)이십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고난 받게 하여 완전하게 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이끄시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은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출(14~15)되는 것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음으로 영광에 이르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아들들영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목표는 시편 8:5 인용에서 암시되었습니다.

구원의 창시자에서 창시자는 헬라어 아르케고스인데, 이는 창시자, 선구자, 설립자, 투사, 근원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가 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아들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도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고난 받으시기 전에도 그리스도는 완전하셨습니다.

온전하게 하다’(텔레이오사이)는 것은 완성하다’, ‘목표에 이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셨다는 것이, ‘온전하게 하심이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 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2:11)


구약의 희생 제사가 하나님 백성의 육체를 거룩하게 했다면(913),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십자가 죽음)는 신자를 온전하게 거룩하게 합니다(9:14; 10:10). 예수님은 신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성도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한 근원 즉 하나님으로 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성도들과 다른 점은,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심으로, 우리와 형제라고 불려지십니다. 주님께서는 형제로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2:12)

 

시편 22:22을 인용합니다. 이 구절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22:22)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2:13)


13절은 이사야 81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가 두 아들들의 이름이 이스라엘을 위한 징조임을 밝히는 부분입니다. 히브리서 213절은 예수님과 많은 아들들의 관계에 적용시킵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자녀들(파이디아‘)입니다. 예수님과 신자들의 관계는 밀접합니다.


<예수님의 인성, 14~18>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2:14)


예수님의 자녀들피와 살을 함께 나눈자들입니다. ’피와 살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존재 양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동일한 피와 살을 나누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는 피와 살을 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심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2:15)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시므로,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평생 노예 상태에 있는 자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2:16)


그리스도는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와 살을 취하신 목적은 천사들을 위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2:17)


자비롭고 신실한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량하십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은 자비롭고 신실한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를 속죄하십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2:18)


예수님은 자신의 신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간과 동일하게 되셔서 연약한 인간을 공감하시며 인간을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 오신, 낮아진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우리와 같이 되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낮아지심이고, 고난이셨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처럼 낮아지셨습니다.

구주의 은혜를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와 형제라고 불리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11). 우리 가까이 계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 하루 주님과 동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일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