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3)
12월 20일
성경: 시편 72:1~20 / 제목: 새 왕의 의로운 통치를 위한 기도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역대하 24장, 요한계시록 11장) 개인(스가랴 7장, 요한복음 10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히브리서 8~10장

<왕의 의로운 판단을 위한 기도, 1~4절>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시 72:1)
왕을 위한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에게 주의 판단력과 주의 의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솔로몬을 연상케 합니다. 인간은 장수, 부, 원수갚는 것을 구합니다. 이것을 초월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판단력은 재판을 올바로 하는 지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바른 판단력과 의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시인은 판단력을 왕에게,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시 72:2)
‘공의’(미슈파트)를 말합니다. 왕은 귀한 은사를 받고 정의롭고 공평하게 다스립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기 때문입니다.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시 72:3)
공의와 정의가 시행되는 나라에서 산과 언덕이 평화를 줍니다. 평화는 땅과 백성, 마음과 영혼과 모든 것이 안정되고 번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왕이 올바른 재판을 하고 공의를 세울 때 산과 들에 평화가 임합니다. 평화가 솟아납니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시 72:4)
왕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정의의 실현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구약윤리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시인은 왕의 등극의식에서 왕의 가장 기본적 의무는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왕은 보호자가 없이 쉽게 억압받는 자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왕이 할 일이 가난한 자, 궁핍한 자, 압박당하는 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고, 궁핍한 자를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는” 메시아의 사역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왕의 주권 아래서 받는 축복을 위한 기도, 5~7절>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시 72:5)
왕이 주님을 경외하게 해 주십시오. 시인은 복된 왕이 오래 살고 활력이 넘치기를 구합니다.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시 72:6)
시인은 단비 이미지를 사용하여 왕의 사역을 말해 줍니다. 왕의 은혜는 단비와 소나기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시 72:7)
이 나라에 평강의 풍성함이 다함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평강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제는 평강이 더욱 풍성하게 넘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의인, 혹은 의가 더욱 흥왕하기 때문입니다. 온 나라에 평강이 넘친 것은 의인이 흥왕하기 때문입니다.
<왕의 우주적 통치를 위한 기도, 8~11절>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시 72:8)
여기의 바다는 자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중해를 가리키며, 강은 유프라테스 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왕의 통치는 바다 끝까지, 땅 끝까지입니다. 그는 땅이 있는 곳까지 다스릴 것입니다.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시 72:9)
“광야에 거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주위에는 광야에 살고, 광야를 마음대로 누비는 베두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시편에 “사막에 거하는 자”가 가끔 나옵니다.
“대적이 그 앞에 엎드린다”, 혹은 “광야에 거하는 자가 그 앞에 굽힌다”는 하반절에 나오는, “원수들의 티끌을 핥는 것”과 평행을 이룹니다. 열국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완전하고 철저하게 복종하는 거입니다.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시 72:10)
다시스는 페니시아의 속국으로 스페인에 있는 동네 이름입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다시스의 선박은 구약에서 유명합니다. 이사야는 이 배들이 위풍당당하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의 배도 다시스의 배와 같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지중해 섬들이 나옵니다. 이사야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섬들은 먼 나라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인근 나라들뿐 아니라, 멀리 있는 이방의 통치자들이 솔로몬 왕을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스바는 예멘입니다. 이 나라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서 왔습니다. 시바는 어느 나라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시 72:11)
가장 멀리 있는 나라, 부자 나라가 솔로몬 왕에게 조공을 드립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전성기 상황을 반영해 줍니다.
<공의와 자비를 위한 기도, 12~15절>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시 72:12)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우는 왕의 사역을 언급합니다. 왕은 약한 자를 향해 의와 사랑을 베푸는 자입니다. 그들을 폭력에서 건지며, 폭력으로부터 보호합니다. 그들을 폭력에서 건지며, 폭력으로부터 보호합니다. 이런 훌륭한 왕이기 때문에, 그의 통치가 땅끝까지 미칩니다. 그의 넓은 통치권은 그의 의에 대한 상급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시 72:13)
왕은 구속자입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불가침성을 부각해 줍니다. 왕은 백성의 생명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는 형제를 돌보는 자의 원형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시 72:14)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시 72:15)
이 왕은 존경을 받으며, 나아가 사람들은 그를 위해 항상 기도할 것입니다. 즉 왕을 위한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하나님의 올바른 대변자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의 영원한 통치와 번영을 위한 기도 및 송축문, 16~20절>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시 72:16)
시인은 왕이 다스리는 동안 땅은 비옥하여 오곡백과를 맺고 백성은 번성을 구합니다. 콩밭이 산꼭대기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콩잎에 바람이 불어 날리는 소리가 마치 레바논의 백향목이 흔들리는 소리 같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아름답고 잘 자랍니다. 그와 같이 오곡이 잘 자랍니다.
성에 있는 사람은 땅의 풀과 같습니다. 풀은 신선하고, 아름답고, 풍성하고 힘차게 성장하는 것의 상징입니다. 땅에 풀이 번성하는 것처럼 백성이 많아집니다. 이것은 왕에게 큰 복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인구가 많았고, 메시아 시대에도 많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시 72:17)
시인은 왕의 이름이 악한 자의 이름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구합니다. 왕의 이름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구합니다. 왕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길 그는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높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도 이름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해처럼 장구하고 사람들은 통해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시 72:18)
여호와만이 홀로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72:19)
“그의 영화로운 이름”은 그 존재의 위엄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속성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이름”과 “영광”은 하나님의 계시가 말씀과 행동으로 힘차게 나타난 것입니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온 세상을 채웁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시 72:20)
“아멘. 아멘”은 회중들의 응답입니다. 그들도 시인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