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20)
12월 5일
성경: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 / 제목: 땅에서 올라온 짐승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역대하 5장~6장 11절, 요한일서 4장) 개인(나훔 3장, 누가복음 19장)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아모스 4~6장

두 번째 환상이 나옵니다. 첫 번째 짐승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두 번째는 땅에서 나옵니다. 땅에서 나온 짐승은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을 할 때는 용처럼 크게 부르짖습니다.
두 번째 짐승은 크고 놀라운 이적을 행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현혹합니다. 그는 부여받은 힘으로 첫째 짐승을 가리키는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합니다.
요한의 환상은 일차적으로 그 자신의 시대의 사회 경제적인 상황에 근거해 이해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얻은 요한의 통찰은 마지막이 임박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사탄의 전략, 11~16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계 13:11)
땅에서 나온 짐승은 속이는 자입니다(참고, 계 13:14). 거짓 선지자로 불립니다(계 16:13; 19:20; 20:10). 어린 양 같은 두 뿔은 짐승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뻗은 유혹의 손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속이는 것입니다.
짐승이 용처럼 말합니다. 둘째 짐승의 역할은 사람들이 첫째 짐승을 경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적을 행하는 힘을 받습니다.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계 13:12)
용이 자신의 권세를 첫째 짐승에게 준 것처럼, 둘째 짐승도 첫째 짐승의 권세를 행사합니다. 그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그 죽게 된 상처가 나온 짐승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계 13:13)
신명기 13장 1절은 거짓 선지자가 이적과 기사를 통해 사람들이 다른 신을 섬기도록 이끌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둘째 짐승은 진정한 선지자들의 기적을 모방해서 사람들을 속여 짐승을 경배하게 합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 13:14)
사탄의 속이는 능력을 거짓 선지자가 공유합니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선전 활동을 담당한 자입니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의 우상을 살아나게 하는 힘을 부여받습니다. 그가 이 우상에 생기를 주자, 그 우상이 말을 하게 됩니다. 이 우상을 말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을 경배하지 않는 모든 자들에게 사망 선고를 내립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계 13:16)
둘째 짐승은 모든 사람들이 첫째 짐승의 표를 그 이마에 받도록 요구합니다.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필요를 좇는 자들은(17절)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 단어의 배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현재 본문에서 이 단어가 가지는 이의는 요한계시록 7장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인치는 것을 모방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짐승을 따르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소유함으로써 교회를 향한 짐승의 분노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분노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육백육십육, 17~18절>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7)
이 표는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을 식별하게 해 줄 뿐 아니라, 날마다의 간단한 상거래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여기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경제적인 제재가 가해집니다. 그 목적은 이것을 통해 믿는 자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협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계 13:15).
이 표는 숫자로 표시된 짐승이 이름과 동일시됩니다. 그 표는 그 짐승의 이름도 아니고, 짐승을 따르는 이들의 이마에 새겨진 짐승의 이름의 숫자도 아닙니다. 이 표는 이름의 숫자입니다. 18절에서는 절에서 짐승을 따르는 자들에게 찍힌 짐승의 숫자가 666임을 알게 됩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8)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숫자 666에서 이 숫자에 해당하는 그 이름을 역추적해 보라는 제안입니다.
짐승의 수는 666입니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견해는 666이 네로 카이사르를 나타내는 숫자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숫자를 암호라기보다는 상징에 더 가까운 것을 이해합니다.
666은 그 각각의 수가 완전수에서 모자란 수입니다. 핸드릭슨은 “실패에 대한 실패에 대한 실패”를 나타낸다고 봅니다. 이 숫자는 짐승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을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