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3)
11월 15일
성경: 골로새서 1장 9~14절 / 제목: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교회의 머리시라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역대상 5, 6장, 히브리서 10장) 개인(아모스 4장, 시편 148~150편)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다니엘 4~6장

그리스도 안에서 골로새에 있는 바울의 친구들은 이미 ‘충만한 지식’을 받았습니다. 충만한 지식(‘에피크노시스’)은 “기독교적 믿음으로 회심하는 것에 포함된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지식의 영역, 9~12절>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님에 대한 “충만한 지식”이라는 특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이 그 지식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것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지 않고, 오히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가진 것을 제대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런 사도의 가르침은 언제나 단조로워 보이는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복음이 지닌 목표는 소수의 엘리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신적 비밀들을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신비한 방식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일상 생활에서 요구하는 것을 분별력 있게 파악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필요한 이유는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일상의 일에 적용할 수 있는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10)
골로새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들에게 기대하는 삶의 표준을 볼 때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10절). 모든 신자 한 명이 다 이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지식의 ‘충만’은 몇몇 사람들만 누리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지없이 위대한 주님이신 분에게 합당한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그들의 주님을 알리고 인류를 위한 주님의 목적들을 제대로 보여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충만히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들을 기쁘게 하려고 ‘연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계시하는 것을 잘 찾아보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특별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자연적인 욕구에 불건전하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옳은 믿음과 올바른 행동 사이에 본질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결국 거짓 가르침은 그 열매로 혹은 열매가 없는 것으로 알게 됩니다.
아무리 관찰해도 지식(‘그노시스’)을 소유했다는 주장과 실제적 선함 간에 분명한 관련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들을 인식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은혜로운 행동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증거는 ‘신령한’ 것이기 보다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지혜의 결과는 행동입니다. 특별한 지식을 가지면 보통 자만하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갖게 합니다.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
바울은 그 방문자들도 못지 않게 이 어린 회심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히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너희가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라고 씁니다.
인간의 삶에 신적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그렇게 짧은 말로, 그보다 더 강조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능력”, 즉 충만한 능력을 받기를 구합니다.
그것은 장엄한 방법에 의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인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광’이 명백하게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누림으로 “영광”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칭찬을 받는 것은 많이 견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견딤으로 그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의와 진리의 길에서 조용히 끈덕지게 나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오래 참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삼가고 억제하는 법을 배웁니다. 특히 그를 시험하는 자들에 대해 더욱 삼가고 억제 합니다.
“기쁨으로”는 압박과 시련 속에서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역사 중 하나입니다. 바울은 끊임없이 그것을 경축하며, 실제적인 야고보도 그를 반박하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
바울이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데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것은 바울은 절대 감사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감사가 넘쳐 흐릅니다. 그에게 그것은 성령 충만한 삶의 독특한 표지(골 2:7)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이상입니다.
골로새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해 이미 갖고 있는 복음의 축복들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런 영적 재산 등은 그들의 것입니다. 이런 멋진 은사들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은사들은 이미 그들의 것입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두 가지 특권은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통해 이 골로새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만드셨을 때 하신 일을 말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자격을 주셨다.
그분이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능력의 영역, 13~14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을”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정식 일원으로서 모든 조건을 갖추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죄사함을 받음으로 성도의 기업에서 자신의 자리를 할당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미래에 기업을 받게 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현재 그런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이 ‘자격을 박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그들의 분깃이시며,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부요한 기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해방의 역사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승리에 참여합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위대한 구원(해방)이 십자가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 명도 빠짐없이 그 승리에 참여합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를 속량(구원)을 얻었습니다. 즉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이 속량은 바로 ‘죄 사함’입니다.
죄사함은 반드시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과거를 용서해 주시고 나서, 우리를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없는 상태로 돌려보내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해방 없는 죄 용서는 온전치 못합니다. 복음은 우리 죄가 사해진 것 때문에 자유가 제공되는 것입니다. 그 죄사함은 십자가에서 비롯되는데,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빚을 청산하셨을 뿐 아니라 원수를 무력하게 만드셨습니다(골 2:14, 15). 아멘.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