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16)
10월 30일
성경: 갈라디아서 6장 1~10절 / 제목: 서로 짐을 지라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열왕기하 11, 12장, 디모데후서 2장) 개인(호세아 3, 4장, 시편 119:121~144)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예레미야애가 2~5장

<그리스도인의 상호 책임적 관계, 1~5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성령은 구체적인 육체의 충동과 싸우다가 패배한 형제자매에게 어떤 반응을 요구하실까요?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에 따라잡힌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육체의 권능 또는 ‘죄의 유혹’이 개별 제자를 잘못 인도하거나 범죄에 압도당하지 않게 막는 한 가지 안전장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자(“신령한 너희는”)는 다른 사람의 범죄를 범죄자를 희생시키고 그 자신을 높이는 기회로 삼지 않고 범죄자를 회복시키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육체를 따라갔기에 실족한 형제나 자매를 회복시키는 데 헌신함으로써 성령과 발맞추고 성령에 따라 분별하도록 서로 돕는 것은 신자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갈 5:13) 하나의 길입니다.
각 제자는 어느 시점에 성령의 길에 남아 있기 위해 중압감을 견디도록 도움을 받고자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것입니다. 신자는 이런 짐을 지는 자가 짐을 더 쉽게 지도록 사랑, 자비, 지지, 필요하면 물질적 도움까지 베풀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일은 종의 임무입니다. “믿음”을 진정한 믿음으로 만드는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것입니다. 서로 짐을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짐을 서로 진다는 것은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갈 6:3)
“서로 짐을 지라”고 명령합니다. 거만함에 우쭐대는 사람은 여전히 풋내기 신자에 불과하고, 반면에 힘든 상황과 싸우는 형제나 자매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의 짐을 지는 것으로 그를 돕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자는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갈 6:4)
동료 제자의 행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갈 6:1)은 그것이 성령이 인도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확인됨을 확실히 하려면, 자신의 행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어떤 범죄에 빠진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갈 6:1), 또는 다른 사람의 긍정적인 업적과 경쟁적으로 비교해서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바울은 신자가 계속 명예를 내세우는(“자랑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더라도 이 목적을 위해 다른 신자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자랑은 다 경쟁적인 대치, 분열, 일반적인 자만을 낳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자랑함으로써 자제력을 발휘하도록 권고합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5)
바울은 개인의 책임과 공동체의 지원 사이에 균형을 맞추면서 공동체에 각 지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자유를 적절하고 결실 있게 행사하도록 온 힘을 다해 도우라고 촉구합니다.
심판 날에는 하나님의 눈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평가에서 다른 신자보다 더 잘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행한 것 자체에 대해 상이 있을 것입니다.
<심음과 거둠, 6~10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가르치는 자의 헌신으로 유익을 얻는 자는 호혜 정신에 따라 가르치는 자의 생계를 위해 자기 물질을 나누어야 하고, 그래야 가르치는 자가 공동체를 위해 사역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어떤 이는 온전한 지식에 입각한 믿음을 갖고 효과적인 사역을 행하도록 성도를 구비시키는 짐을 집니다. 또 다른 이는 이 사역을 행하는 개인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짐을 지고, 그렇게 하면 그들은 성도를 구비시키는 사역을 게속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의 은사가 남용되거나 악용된다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이 의도한 대로 그리고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지시하고 능력을 주는 대로 사용해야 하는 실질적 책임을 동반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심으려고 수고한 그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바울은 자신의 전도로 회심한 자에게 능숙하고 일관되게 성령이 인도하는 곳으로 열심히 따라가기를 반대하는 육체의 충동을 만족시키는 일과 관련해서 상황을 길게 보도록 권고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육체의 일”(갈 5:19~21)을 계속 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그 심음의 결과 영생을 누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농부는 수확의 열매를 누리기 전에 수확을 얻을 때까지 오랫동안 많은 수고와 관심을 투자해야 함을 알고 씨를 심게 됩니다.
9절 후반부는 지치거나 낙심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우리의 삶이 성령의 인도를 더 잘 받아 성령을 위하여 심을 기회, 사실은 성령을 위하여 심을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바울은 결론을 제시합니다. 지금은 심기에 적합한 때 곧 적당한 ‘철’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할”,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 평생의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하라고 권면합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