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8)
10월 20일
성경: 갈라디아서 3장 6~14절 / 제목: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복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열왕기하 1장, 데살로니후전서 1장) 개인(다니엘 5장, 시편 110, 111편)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예레미야 21~23장

<구약 성경으로부터의 논증, 6~10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 3:6)
아브라함의 본보기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기초로 하나님에게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믿은 약속이 많은 자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창 15: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으로 반응하자 “그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라고 합니다(창 15:6, 참조).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 3:7)
아브라함의 자녀들은 그의 육체의 계통을 따라 난 후손 즉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인 후사 즉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오히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26)
바울은 “율법 아래” 사는 것은 종노릇하는 생활로 묘사합니다. 율법 행위에 의존하는 자는 누구든지 불가피하게 저주를 받는 것으로 끝납니다. 누구도 실수 없이 모든 계명을 행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믿음인가 행위인가, 11~14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의인”이 되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의롭다 함과 생명을 얻는 길은 “믿음”, 곧 “신앙”의 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갈 3:1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신 21:22~23)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우리를 대신하셔서 그 저주의 자리에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스러운 죽음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저주 받아 죽음으로 율법 저주의 경고 아래 태어난 모든 자를 속량하려고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속량하다’는 종(從)을 사거나 해방할 때 “값을 치름으로 어떤 사람에게 권리를 확보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그리스도는 자신을 율법 저주의 경고 아래 살던 모든 자를 위해 “저주를 취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지배 아래 살던 모든 자를 값을 치르고 속량하여 율법의 권세를 끝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시킨 율법의 기한이 끝나자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한 복을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민족”에게 주셨습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