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4)

by 주인장 posted Oct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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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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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갈라디아서 21~10/ 제목: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열왕기상 19, 데살로니가전서 2) 개인(다니엘 1, 시편 105)

복있는 사람 성경읽기: 예레미야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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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바울의 동료>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2:1)

십사 년 후에라는 그리스도를 만난 일이 있고 14년 후인지, 또는 예루살렘을 첫 번째 방문한 일(1:18~20)이 있고 14년 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두 번째 방문은 예루살렘을 첫 번째 방문한 14년 후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바울은 두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디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바울에게 디도는 선교의 동역자입니다.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2:2)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은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자신의 복음을 앞장서서 제시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유력한 자들과 의논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기둥을 유력한 이들”, 대단한 인물로 생각되는 자로 묘사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9절에서 기둥같이 여기는 자로 지칭되는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염두에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계속해서 달음질한 것이 헛되게될 정도로 이 만남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선교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예루살렘 기둥의 검토에 맡깁니다. 이때 예루살렘의 기둥은 바울의 메시지가 확실히 자기들의 복음 이해와 일치되고, 그래서 예수의 그리고 예수에 대한 진정한 메시지와 조화된다고 확언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과 사명이 자기보다 먼저 사도가 된 자들의 동의와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겸손한 태도이며, 또한 복음 사역하는 바울 역시 먼저 믿고 또 먼저 사도된 예루살렘 사도들의 인정과 확인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먼저 믿고 또 우리보다 신앙이 더 깊은 사람들의 조언과 지도를 따르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2:3)

바울은 디도에 대해서 말합니다. 할례는 유대인을 헬라인을 비롯하여 널리 비유대인과 구별하는 상징적인 표징이었습니다.

일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헬라인) 디도에게 예수 운동의 일원이나 예수 운동을 대표하는 선교단의 일원이 되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도가 억지로 할례 받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2:4)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방인은 누구든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바울은 거짓 형제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믿었지만 바울은 그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거짓 형제들은 가만히 들어온 자들입니다. 거짓 형제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유를 엿보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4).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2:5)

 

바울은 거짓 형제에게 복종했다면 복음 진리가 손상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 형제들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멀어지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에서 끊어지게 하려는 것이 거짓 형제의 목적입니다.

 

 

<6~10, 바울의 복음>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갈 2:6)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갈 2:7)

 

예루살렘의 기둥이 바울과 바나바를 하나님에게 부르심 받은 자로 인정하여 사도로 사역하게 한 것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사역이 성공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기둥이 보기에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선교에서 일어난 일과 베드로가 선봉에 선 유대인 선교에서 일어난 일 사이의 유사점은 하나님 아들의 구원이 이방인과 이방인의 두 영역에게 똑같이 이르게 되어 한 하나님이 두 선교에서 진실로 역사한 것을 입증하는 충분한 증거가 갖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기둥은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할레자를 위해 복음을 맡긴 것처럼 바울에게는 무할례자를 위해 복음을 맡겼다고 확언해 준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 2:8)

 

예루살렘의 기둥은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 열매로 보아 바울의 사역에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 2:9)

 

바울은 유력한 이들야고보”(주의 형제), “게바”(또는 베드로), “요한으로 부릅니다. 바울은 이 세 인물을 유력하다는 이들이나 기둥같이 여기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예루살렘의 기둥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친교의 오른손을 내밀(악수를 제안)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갈 2:10)

 

예루살렘 기둥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그들이 해 온 일을 계속 행하라고 요구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의 기둥이 부탁하기 전에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일을 자신이 이미 열심히 행하고 있음을 증명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일국 목사(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