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 / 잠언(26)
9월 30일
성경: 잠언 27장 1~13절 / 제목: 삶과 우정에 대한 잠언
맥체인 성경읽기: 가정(열왕기상 2장, 갈라디아서 6장) 개인(에스겔 33장, 시편 81, 82편) 복있는사람 성경읽기: 이사야 17~20장
<분노하는 자, 1~4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간의 미래는 앞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예측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대로 다 되지는 않습니다. ‘내일’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미래입니다.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약 4:14, 참조)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잠 27:2)
어떤 일이든지 스스로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2절의 ‘칭찬하다’와 1절의 ‘자랑하다’는 같은 히브리어 동사 ‘할랄’입니다.) 칭찬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는 칭찬은 인격적으로 부족한 즉 교만한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남이 하는 칭찬으로 그 사람의 평판이 좋아집니다.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높은 신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잠 27:3)
미련한 자의 분노가 주는 정신적 괴로움을 돌과 모래에 비유합니다. 돌은 무겁고, 많은 모래도 들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모래와 돌을 옮기는 일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 무게가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분노는 사람을 돌과 모래의 무게가 주는 괴로움보다 더 큽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 27:4)
질투심이 갖는 파괴력이 큽니다. 분노의 파괴력은 잔인하며, 급하게 밀려오는 홍수로 표현됩니다. 허리케인이나 태풍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홍수의 범람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분노가 폭발할 때 그것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분노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가진 것은 질투입니다. 질투라는 홍수를 막기 위해 그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질투는 분노보다 파괴력이 더 큽니다.
<좋은 친구, 5~10절>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잠 27:5)
비교의 대상은 ‘면책’과 ‘숨은 사랑’입니다. ‘면책’은 ‘드러내 놓고 꾸짖는 것’입니다. ‘숨은 사랑’은 드러내지 않고 표현하지 않은 사랑입니다. 즉 면책이 숨은 사랑보다 낫다는 말은 사랑에서 비롯된 꾸짖음이 표현하지 않은 사랑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꾸짖음과 책망도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한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 27:6)
비교하는 두 개의 대상은 ‘친구의 뼈아픈 책망’과 ‘원수의 빈번한(잦은) 입맞춤’입니다. ‘책망’은 상처를 주고, 입맞춤은 달콤함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것이 바뀝니다. 친구가 주는 뼈아픈 책망은 진심에 나오는 권면입니다. 그러나 원수의 입맞춤은 속마음을 숨기기 위한 유혹입니다. 따라서 진실은 거짓보다 강하며, 사람을 더 건강하게 만듭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 27:7)
꿀은 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상황에 관계없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부른 사람은 꿀이라도 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서 무엇이라도 먹어야 하는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달게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나 싫어하는 것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잠 27:8)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하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에 비유됩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향에서 쫓겨나 떠날 수밖에 없는 이 사람의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처럼 작은 소리에도 놀라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잠 27:9)
친구의 충고의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충고는 기름과 향에 비유됩니다. 기름과 향료는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귀한 물품입니다. 이와 같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친구의 충직한 충고는 기름과 향료처럼 친구의 마음에 기쁨과 감동을 가져다 줍니다.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잠 27:10)
친구의 가치는 충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이웃사촌이 되어 구체적인 도움을 줍니다.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는 말은 친구란 세대간을 넘어서 지속되는 소중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진정한 친구는 세대를 넘어섭니다. 진정한 친구 사이는 형제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러기에 환란을 겪을 때 멀리 있는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 즉 친구가 낫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 11~13절>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으리라.”(잠 26:11)
‘내 아들아’라고 부르면서 지혜자는 다시 아들에게 지혜를 얻을 것을 일깨웁니다. 자녀가 지혜를 얻게 되면 부모는 마음이 기쁩니다. 이스라엘에서 많은 교육은 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 자녀가 잘 이해하게 따라옵니다. 그 기쁨은 배가 됩니다.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을리이다.’ 아버지는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노동보다는 지혜를 얻고 가르치는데 빠져 귀한 시간을 보낸다고 이웃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지혜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부모에게도 기쁨이 되며, 대내외적인 비난을 막을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 26:12)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피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즉 지혜자는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을 미리 준비하는 자입니다. 그는 재앙이 닥쳤을 때 재빨리 피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준비하지 않았으므로 재앙을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잠 26:13)
함부로 보증을 서는 일은 위험한 것입니다. 타인에게 보증을 서는 것을 경고합니다. 이런 위험을 자초한 사람에게 어떤 자비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김일국 목사(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