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2)
성경: 스가랴 9장 9~17절 / 제목: 구원을 베풀 왕
<맥체인 성경 읽기(4월 22일)>: 가정(레위기 26장, 시편 33편) 개인(전도서 9장, 디도서 1장) / <복있는 사람> 성경 읽기: 요한복음 9~10장

<예루살렘에 임하는 공의롭고 겸손한 왕, 9~10절>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루살렘 거민을 향해 매우 기뻐하며 즐거이 소리치라고 명하는 까닭은 그 곳에 임할 그들의 왕 때문입니다. 그는 공의롭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행하심에 있어 ‘공의로우시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악을 악이라 규정하고 심판하시며 의인을 구원하십니다.
그는 ‘겸손합니다’. 스가랴서의 왕은 위엄과 위세의 존재가 아니라, ‘공의로움’의 근본이 다른 이를 긍휼히 여기며 구원함이라는 점, 그리고 ‘구원을 베푸시며’로 번역된 표현이 수동형이라는 점은 이어지는 ‘겸손하다’와 단단히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는 나귀를 타는데, 그 나귀는 암나귀의 새끼입니다. 말이 군대와 힘의 상징인 반면, 나귀는 군대와 무관하게 남자들이 타거나 여자들이 많이 탑니다. “나귀 새끼”는 아이들이 타는 짐승이기도 합니다. 스가랴서 본문은 “화평”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임하시는 왕의 모습을 “암나귀의 새끼”를 통해 표현합니다. “나귀”는 왕의 겸손함과 왕이 전하는 “화평”을 연결시킵니다.
9절은 다윗의 후예에 대한 기대라고 볼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며, 나아가 귀환 공동체의 회복과 영광에 대한 기대와 크게 분리되지 않습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세워질 왕에 대한 기대의 본질은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하나님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으실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예루살렘이 나란히 언급된다는 점에서 13절의 유다와 에브라임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남북 이스라엘 전체를 염두에 둔 ‘온 이스라엘적 관점’을 보여 줍니다. 13절은 이 둘을 ‘시온의 자식들’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남북 왕국에서 이러한 전쟁 무기들을 모두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전쟁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지 않게 될 때, 시온에 임하는 왕은 이방을 향해 ‘평화’(히. ‘샬롬’)를 전할 것입니다.
전쟁 무기가 사라지고 이방을 향해 ‘평화’를 전할 때 이 왕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릅니다. 그의 통치 범위가 넓은 것은 그 나라의 무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에서 전쟁 무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를 위협하고 겁을 주어서 이루어진 평화가 아니라 전쟁 무기를 모두 버리고 평화를 전하고 말함으로 이루어진 평화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뛰어놀며, 뱀과 어린이가 함께 즐거워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집니다(사 11:1~10, 참조).
<하나님이 그 백성을 무기로 삼으심, 11~17절>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하나님이 애굽에서부터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을 업어 인도해 내셨음을 상기시키면서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해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라고 제시됩니다(출 19:4~12, 참조).
출애굽기 24장의 언약 체결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세워지는 것을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의식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스가랴서 본문의 “언약의 피”는 출애굽 때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맺은 언약을 상기시킵니다. 그런 점에서 “언약의 피”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가장 든든한 보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11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생명과 죽음을 매개하는 것으로 쓰여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연결시킵니다. “갇힌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시르’는 ‘죄수’를 의미합니다. ‘죄수’는 바벨론 포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며, 나아가 현재는 바사(페르시아)라는 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백성을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갇힌 자”를 설명하는 또 다른 표현은 ‘물 없는 구덩이“입니다. 이 부분은 요셉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고(창 37:24), 나중에 바로의 감옥에 ’죄수‘와 함께 갇힌다(창 39:20, 22). 하나님은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진 죽은 자와 같은 이스라엘을 건져내실 것입니다.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로 번역된 표현은 직역하면 ’소망의 죄수들‘입니다. 갇혀 있는 ’죄수‘와 “소망”이 서로 결합됩니다. 죄수 혹은 갇힌 자로 표현될 수 있는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는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의 장래에 소망이 있게 하십니다(렘 31:17). 하나님은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의 장래에 소망이 있게 하십니다(렘 31:17).
일반적으로 ’요새‘ 혹은 ’피난처‘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피하는 자에게 요새가 되십니다. 포로가 되고 죄수가 된 이스라엘을 지켜줄 견고한 요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이 말씀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온으로 돌아오라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는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구원이 임박하고 확실함을 강조합니다. 12절 후반절에서는 ’오늘‘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구원은 바로 ’오늘‘ ’너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여기에서는 ‘내가 갑절로 갚으리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13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당긴 활로 삼아”로 번역된 표현은 ‘밟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와 “활”을 의미하는 명사로 이루어집니다. 발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길고 강한 활을 구부리는 것을 표현할 수도 있고, 발을 사용하여 그러한 활에 활시위를 감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지 이제 전쟁의 준비를 갖춘 상황을 표현합니다.
‘에브라임을 채웠다’는 것은 활시위에 에브라임을 화살처럼 매겼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유다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감긴 활시위라면 에브라임은 그 활시위에 매겨진 화살입니다.
또 요엘서와 스가랴서 본문의 “헬라”는 ‘강력하고 먼 나라’를 뜻합니다. 13절은 하나님이 유다와 에브라임을 사용해 열방의 한 부분인 헬라를 치실 것을 선언합니다.
14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하나님은 유다와 에브라임을 화살로 삼으실 것이라고 하셨고, 14절은 이렇게 화살을 쏘는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 위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신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신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신다’는 스가랴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위에 임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주관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14절은 세상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보며 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위엄으로 행하심을 선포합니다.
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보호하심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임한 승리를 표현합니다. “물맷돌”은 양치기 소년이 양 떼를 맹수로부터 지키기 위한 수단이면서, 군대가 보유한 중요한 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약한듯하지만, 상대방의 살상 무기를 장악하고 제압합니다.
15절은 대적에 대해 완벽한 승리를 거둔 이들의 기쁨을 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이 구절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심에서 비롯된 완벽한 승리입니다. 이스라엘은 ‘갇혀 있는 자’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헬라 자식들”로 대표되는 강력한 세력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백성들이 양 떼를 맹수와 여러 위험으로부터 건지듯, 하나님이 양과 같은 백성을 이끄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방에게 “무거운 돌”이 될 것입니다(슥 12:3). 이제 이스라엘은 왕관의 보석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니, “갇힌 자들”이 그날에 “왕관의 보석”으로 여호와의 땅에서 높이 들려 빛날 것입니다.
17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시온의 아름다움은 시온에 임하시는 왕의 아름다움에서 비롯합니다. 그리고 곡식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현실에서의 실제적인 풍성함으로 표현합니다. 곡식과 포도주는 나란히 쓰여서 풍요로움과 풍성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원하시며 그 구원의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 같은 구체적인 일상으로 표현됩니다.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