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2)

by 주인장 posted Apr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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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2)

성경: 스가랴 17~17/ 제목: 화석류 나무에 선 자

<맥체인 성경 읽기(411)>: 가정(레위기 15, 시편 18) 개인(잠언 29, 데살로니가후서 3) / <복있는 사람> 성경 읽기: 누가복음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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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가 본 환상, 7~9>

 

7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다리오왕 제이 년 열한째 달에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 임했습니다. 7절에 날짜가 언급됩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이름이 덧붙여 있습니다.

 

8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밤에 내가 보니라는 말로 환상이 소개됩니다. ‘밤에 보았다는 표현은 꿈으로 본 환상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스가랴는 자신이 본 환상들을 소개합니다. 캄캄한 밤처럼 흑암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인정하는 그들에게 밤에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화석류나무는 늘 푸른 관목의 한 종류입니다. 화석류나무는 회복, 사람이 살게 됨, 평안 등을 의미하고 상징합니다. 스가랴가 본 것은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서 붉은 색 말을 탄 사람이었습니다. 그 뒤로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었습니다.

 

9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는 스가랴 겨에 서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게 말하는 천사는 붉은 말을 타고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라고 여겨집니다. 11절에서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여호와의 천사(말아크 아도나이)”라고 부릅니다. 이 천사가 스가랴에게 이들이 무엇인지 네가 네게 보이리라라고 합니다. 천사는 여호와의 말씀을 알려 주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과 우주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지만 인간은 그 계획과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재자로서 천사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로 천사가 등장합니다. 천사의 등장은 현실 속에서 근본 질서의 궁극적 변화를 알리며 현재 세상에 굴복하거나 체념하지 안헥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10~17>

 

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 내게 말하는 천사가 스가랴의 질문에 대답합니다. 이 여러 말들과 그 탄 자들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이들입니다. 스가랴에 등장하는 이 세 색깔의 말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에 의해 이끌려서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수행합니다.

 

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하나님에 의해 온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진 말 탄 자들이 하는 말을 뜻합니다. 그들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에게 그들이 본 것을 보고합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는, 여호와의 천사로 소개됩니다.) 온 땅에 보내진 이들은 자신들이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차분하고 평화로웠다고 보고합니다. 각기 자기 처소에 평안히 머물러 있는 세상이 이들이 본 세상이었습니다.

 

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 되었나이다 하매

 

온 땅이 평안하다는 보고를 들은 여호와의 사자는 곧바로 여호와께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예루살렘의 황폐를 인하여 탄식합니다. 천사가 이 탄식을 대신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애통하고 무엇을 탄식해야 하는지 모를 때, 여호와의 사자가 탄식을 대신합니다(8:26, 참조). 여호와의 사자가 탄식하는 것, 그리고 성령께서 탄식하시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참된 것을 위해 탄식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는 시편에 종종 나타납니다. 이는 탄식을 표현한 것입니다. 온 세상의 평안함과 예루살렘과 유다의 처절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진노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현실이 탄식이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칠십 년의 기간은 포로 기간을 말합니다. 칠십 년이 끝나면 노하심도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회복도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 건축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천사가 백성을 대신해 탄식하고 여호와께서 백성을 대신히 천사에게 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대답은,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근본저그로 선한 말씀이며 위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통받고 탄식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예루살렘과 시온을 향한 여호와의 마음이 질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카나와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 킨아로 표현됩니다. ‘질투는 누군가를 향한 열심 있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향해 품으시는 열심을 가리킬 때 이 동사가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열심을 내셔서 야곱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십니다(39:25, 참조).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엘 칸노)로 알려지십니다(1:2; 20:5, 참조).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질투로 표현됩니다.

여호와께서 포로에서 풀려난 혹은 포로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과 시온을 위해 열심을 품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위해 질투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들을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크게 열심을 내십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의 근거입니다.

 

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진노하십니다.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는가 하면, 열방(여러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큰 진노가 있습니다. ‘안일한’(샤아난)편안하다, 안전하다의 의미와 더불어 느슨하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부주의하다, 변덕스럽다, 거만하다를 뜻하기도 합니다. 힘을 갖추거나 부를 확보함으로써 스스로 평안하고 안전하다 느끼게 되는 이들에게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거만함 혹은 해이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일한이들은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과 환난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무관심합니다. 그러므로 안일한 여러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힘과 권세에 기반을 두고 다른 나라를 짓밟고 군림하되 상대의 고통에 개의치 않는 제국의 교만함과 오만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볼 수 있습니다.

안일한 여러 나라들은 다리오 시대 페르시아와 고대 근동 세계의 평화로움이 반영됩니다. 모든 세대 속에서 힘에 기반을 두고 세상을 억누르는 열방 나라의 본질을 드러내고 폭로하는 말이 안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국들은 예루살렘을 비웃겠지만, 하나님이 안일한 자신들을 향해 진노하신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린당하고 짓밟힌 나라들이 겪는 고통과 환난에 무심한 제국을 향해 심히 진노하십니다.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더하였습니다. 이 말은 재앙이 되게끔 도왔다는 뜻입니다. 재앙이 되게끔 도왔다는 것은 피지배 민족이 처한 곤경과 참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온을 친 열방들(여러 나라들)은 자신들의 힘과 권력으로 시온을 이긴 것으로 알 것이며, 시온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억압했습니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6절과 17절은 시온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을 다룹니다. ‘그러므로이후에 시온을 햐나님의 구원이 선포될 것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아오심은 시온을 향한 그의 불쌍히 여기심에 근거합니다. ‘불쌍히 여기심’(라하밈)은 여성의 태를 가리키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으며 긍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시온에 돌아오셨고 시온에 거하십니다.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돌아오심이 결합됩니다. 성전 건축이 백성들의 돌이킴을 상징한다 했지만, 사실 그들은 이 건축을 끝까지 행할 힘도 없습니다. 16절은 여호와의 돌아오시는 결과로 이루어질 변화 가운데 하나로써 성전이 건축될 것을 말합니다. 백성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지만 그것을 마침내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먹줄이 쳐지다는 건물을 짓기 위해 측량줄을 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 측량줄이 쳐질 것입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 건축가들이 활동하게 되며 성전이 건축될 것입니다. 먹줄을 치는 것은 가장 기초 시기의 작업이지만, 동시에 재건 공사의 시작과 완성을 의미합니다. 시작되었으니 완성될 것입니다.

 

17 그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 하니라

 

시온은 나의 성읍들로 불립니다. 여호와의 집이 있으니 시온은 여호와의 성읍입니다. ‘넘치도록 풍부하다는 표현은 좋은 것으로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온에 가득하게 될 경제적 풍성함을 암시합니다. 성전 건축이 경제적 회복과 풍성함과 연결됩니다. 이는 학개서의 주제입니다(2:18~19, 참조).

이런 회복은 시온을 향한 여호와의 위로와 선택으로 표현됩니다. 예루살렘을 다시 위로하고 다시 선택하신다는 말씀은 바벨론 포로와 함께 깨어진 언약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열조와 맺었던 언약(약속)을 새롭게 하십니다.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