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47)

by 주인장 posted Mar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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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7)

성경: 누가복음 13:18~35 / 제목: 예루살렘의 비극

맥체인 성경 읽기(33): 가정(출애굽기 14, 누가복음 17) 개인(욥기 32, 고린도후서 2) / 복있는 사람 성경 읽기: 마태복음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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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와 누룩 비유, 18~21>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과 같고 무엇으로 비교될 수 있는지 질문하십니다(18).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예수님의 대답은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어떤 사람이 채소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습니다(19).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가지에 몰려듭니다.

겨자씨는 매우 작습니다. 당시 가나안 지역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씨앗이 바로 겨자씨였습니다. 당시에는 겨자씨를 정원에 심지 말라고 할 정도로 아주 작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대중의 관심 가운데 웅장하고 화려하게 시작하고 확장되는 나라일까요? 만일 예수님께서 그런 나라를 의도했다면 능력과 웅장함의 상징인 백향목을 말씀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작은 새들이 쉴 만한 나무로 자랍니다. 이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영접한 사람들과 교회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 영향력을 주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넣어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십니다(21). 서 말은 약 40에 달하는 많은 양입니다. 이 정도 밀가루로 빵을 만들면 100~15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누룩은 적은 양으로 밀가루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 채 시작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22~35>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예수님은 각 도시와 마을을 순회하며 가르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22). 예수님은 가시면서 각 성에 있는 마을을 다니시며 가르치셨습니다.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길 위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지 질문합니다(23). 이 질문은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의 대답은 구원을 받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해 구원에 이르는 일이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대답합니다. ‘힘쓰라는 운동선수가 시합을 하거나 군인이 전쟁을 치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넓은 대문은 세상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이 길의 최종 목적지는 멸망, 곧 영원한 고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라고 하신 것은 좁은 문입니다. 바로 생명의 문입니다.

좁은 문은 들어가기 쉽지 않으므로 힘써야 합니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24).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구원의 문은 열려 있으나 언젠가는 닫힙니다. 구원의 문은 좁을 뿐 아니라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닫히기 전에 지금 반응해야 합니다. 내일로 연기해놓고 문이 닫힌 후에 열어달라고 간청하면 더 이상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어떤 사람들은 주 앞에서 먹고 마시는 친밀한 관계였다고 호소하고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웠다고 증언할 것입니다(26). 그러나 예수님은 모른다고 반응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공동체에 속하고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가 아닙니다.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그들의 삶이 그들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행실이 악한 자들은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예수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주님께 배우기도 했지만 그들은 진실로 주님을 믿거나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8~30절은 구원의 문이 혈통을 위해 열리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심판의 때가 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28).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최후 심판 이후에 주어지는 종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밖으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28). 이 표현은 지옥에 던져지는 자들의 고통을 반영합니다.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유대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서남북 열방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려고 올 것입니다(29).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식사를 나눌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브라함은 더 이상 혈통의 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먼저 된 자들이 나중되고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놀라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동안 어떤 바리새인이 와서 헤롯이 죽이려고 찾는 중이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31).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예수님은 저 여우’(헤롯)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합니다(32). 여우는 잘 숨고 영리한 짐승입니다. 이런 여우는 이중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와 같은 맹수에 비해서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는 공격적으로 돌변합니다. 헤롯은 빌라도에 비해 약했지만 힘없이 끌려온 예수님에게 폭력적으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이중적인 속성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헤롯은 여우처럼 하나님 나라 확장을 훼방 놓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다가 3일째 완전해질 것입니다(32). ‘오늘과 내일과 그 다음 날은 매일의 활동 또는 짧은 기간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것으로 요약하십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위협에도 이 일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3일째 완전하게 되실 것입니다. 3일째는 부활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으므로(23),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선지자의 사명,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통치하는 여우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메시아를 거부하는 예루살렘의 운명을 2인칭을 사용해 탄식하십니다(34~35). 예루살렘은 선지자를 죽이고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도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을 죽일 때, 죽임 당한 자들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배교했다는 죄목을 덮어 씌웁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저항하는 예루살렘은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암탉이 날개 아래에 새끼를 모으는 것 같이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노력했습니다(34).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지만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내민 구원의 손길을 원치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되고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35).

 

김일국 목사 (김해 늘푸른전원교회